카테고리 없음

220517~18 그리스1<아크로폴리스박물관>

서영도 2022. 6. 8. 15:00

 

여행기간  :  2022.5.17. ~ 2022.5.30.

 

고대 그리스 문명은 유럽 문명의 시원이자 인류 문명의 원천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조해낸 독창적인 문화와 문명의 자취는 숱한 고전과 유물, 유적으로 고스란히 남겨졌다

여기에는 그리스의 12신과 영웅의 이야기는 물론 보통사람들의 희로애락도 담겨있다

그리스 역사문화 탐방은 그리스 고대문명과 영욕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 여행이자 미학 기행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 나서는 여행길이다

2020년 2월에 요르단과 오만 여행을 다녀온 뒤 그해 5월에 그리스여행을 가기로 했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전세계로 퍼지며 통행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그동안 미루어져왔던 그리스여행이다

5월로 들어서며 그리스의 방역정책에도 변화가 생기며 그동안 입국 시 요구해왔던

코로나 PCR음성확인서가 필요없어졌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입국 시 PCR 또는 신속항원 음성확인서가 필수였다

자칫 그리스 현지에서 코로나에 감염이라도 된다면 예정된 날자에 귀국하지 못하고

그리스 현지의 호텔에서 1주일 가량 더 머물러야할 가능성도 없지 않았지만

모처럼 여행을 떠나고싶은 나의 욕구를 제어하지는 못했다

 

발견된

여행일정표

 

아테나 IN - 코린토스 - 에피다브로스 - 미케네 - 올림피아 - 델포이 - 칼람바카 - 베르기나 - 데살로니키의 순서로

그리스 본토를 여행한 다음

로도스 - 크레타 - 산토리니의 섬투어를 하는 14일 일정이다

 

항공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해외항공편이 원활하지 못해 아부다비 환승이다

인천 ~ 아부다비 간 9시간 40분,

아부다비 ~ 아테나 간 4시간 30분 이동한다

 

아테네 시내 모습

 

기내 및 아부다비 공항 내 실내에서조차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사람이 엄청 많다

아테네 시내 모습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대한민국에서는 실외에서 적어도 90%이상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아테네 시내를 거닐며 느낀 감정은 내가 잠깐 딴세상에 온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근 2년 동안 K방역에 너무나 잘 길들여져 있었음인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는

도대체 뜨악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코로나는 아무리 방역을 한다고 해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는 질병이다

우리나라처럼 방역이 엄격하지 않았던 나라에서는 이미 코로나 발생율이 안정되었을 때

우리나라는 뒤늦게 방역조치를 완화했고 한동안 전세계 코로나 발생율 1위를 찍고 나서야

지금처럼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지 않았는가

회초리도 일찍 맞는 게 낫다

K방역이라고 호들갑 떨더니 뒷북을 쳤으니 정치방역이란 비난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는 없다

 

 

★ 아크로폴리스 박물관(Acropolis Museum)

 

뉴욕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가 설계한 건물이다.

박물관에는 아르카이크 시대부터 로마 시대까지, 아크로폴리스와 그 주변에서 발견된 유물이 소장되어 있으며,

0층에서 3층까지 마치 아크로폴리스에 들어가면서 유물을 마주하는 듯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디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으로부터 244미터 떨어진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BC 6세기부터 AD 6세기에 걸쳐 다양한 유물이 출토된 유적지의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공법으로

기둥을 세워 그 위에 건축한 형태이다

 

좌상부 아크로폴리스로부터 지척의 거리인 우하부에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있다

파르테논 신전의 장축과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3층의 장축 방향이 일치한다

 

박물관의 3층은 파르테논 마블을 맞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유리 홀로,

홀 전체가 파르테논 신전을 거울처럼 비추도록 기울어져 있다

현재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있는 파르테논 마블이 돌아온다면

옛날 신전에 걸려 있던 때와 똑같은 축으로 전시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박물관 내 전시 유물이 많기도 많지만 한국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 판에

그리스 역사에 대한 사전 지식의 부족으로 어느 유물의 사진을 꼭 찍어야할지 몰랐다

그중 촬영한 일부만이라도 소개하는 수밖에 없다....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의 조각품, 수술용 칼 등이 조각되어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학과 건강의 신이다

 

디오니소스

음주로 무아지경에 빠진 듯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디오니소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신이었다

와인, 축제, 음주, 무아지경의 춤과 연관된 신으로

디오니소스 축제는 아테네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축제였다

축제 때 소포클레스 등의 연극경연이 펼쳐지며 그리스 연극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니케(Nike) 여신

 

승리의 여신 니케가 샌들을 고쳐신는 모습,

니케 여신은 등뒤에 날개가 달린 형태로 묘사된다

 

 

 

 

카리아티드(Caryatid)

 

아크로폴리스의 에레크테이온 신전의 기둥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보존을 위해 이곳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BC 5세기 페르시아 전쟁 때 그리스연합군을 배반한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도시국가 카리아의 여인을 형상화한 것이다

 

당시 그리스는 도시국가 연합이었고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최대 강국이었다.

하지만 해상 패권의 지배를 위해 그리스를 넘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다 건너 페르시아였다...

영화 300에서 잘 묘사되어 있듯이 페르시아의 국력은 어마어마 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도시국가 연합이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결국 모두 승리하게 되지만,

모두 똘똘 뭉친 것은 아니었다.

국력이 약하거나 페르시아 힘에 겁먹은 몇몇 도시는 아테네에 등을 돌리고 페르시아와 협조하였으니

그  대표적인게 카리아 지방이었다.

 

전쟁에 승리 후 아테네는 배신한 카리아에게 혹독한 책임을 물었다.

도시는 황폐화시키고 남자는 죽이고 여인네들은 모두 노예가 되었다

 

신전의 기둥이 되어 노예로서 평생 무거운 짐을 머리 위에 짊어져야하는 여인들의 운명이 처연하다

동맹국에 배반의 경고로서 필요했을지라도.....

 

한쪽 다리를 살짝 구부린 자세가 아주 농염하고 요염해 CCTV라도 없다면 어찌 하나 보쌈이라도 하고싶다

 

 

머리를 땋은 뒷머리 모습이 정말 예사롭지 않다

앞모습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문드러져 코가 납작해지는 등 앞프로디테의 위상을 잃었지만

뒷프로디테의 매력만큼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배반국의 여성일지언정 신성한 신전을 위해서는 최대한 아름답게 장식해야했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의 돌 다루는 솜씨가 보통은 아니다

혹자는 대리석보다 훨씬 단단한 화강암을 떡 주무르듯한 한국인에 비하면 별 것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리스 여행 내내 이곳저곳 둘러보며 느낀 소감은 한국인에 비해 결코 못하지 않은 것 같다

 

 

파르테논 신전의 동쪽 박공면,

아테나 여신이 제우스의 머리를 뚫고 탄생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참고로 지붕 아래 삼각형의 구조물을 `페디먼트(Pediment)`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박공면`이라 한다

 

동쪽 박공면 축소 모형,

아테나 여신의 탄생 시간을 좌측 끝 태양신 헬리오스(Helios)의 마차(좌)와 우측끝 달의 여신 셀레네(Selene)의 마차(우)로 묘사했으니 해가 뜨고 나서 달이 뜰 때까지의 시간이 산통의 시간이었다는 의미이다

 

제우스가 테티스와 오케아노스의 딸이자 현명한 지혜의 신, 메티스와 정을 통한 뒤,

제우스는 메티스에게서 아들이 태어난다면, 제우스를 능가하는 신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이에 겁을 먹고 제우스는 메티스를 삼켰는데, 이미 메티스는 제우스의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

어느날, 제우스는 갑자기 두통이 생겨 다른 신에게 상담을 했다.

기록에 따라 다른데 헤파이스토스  혹은 프로메테우스가 도끼로 제우스의 머리를 쪼개자

그 안에서 아테네가  완전 무장한 상태로 태어났다.

아테나 여신은 태어날 때부터 영원히 순결을 지키기로 스틱스 강에 맹세했기 때문에 영원한 처녀의 신이다.

 

박공면(pediment), metope, frieze 개념도

말고삐를 잡은 손등에 툭 불거진 혈관까지 아주 현실감 있게 표현했다

조각가는 자신의 손등을 수없이 들여다 보며 이 조각을 완성했으리라 짐작된다

 

 

파르테논 신전의 서쪽 박공면 축소 모형으로

아테나 여신과 포세이돈이 아테네 수호신의 자리를 두고 서로 싸우는 모습을 표현했다 

 

아테나 여신은 아이기스 방패를 들고 포세이돈은 삼지창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아테나는 어떻게 그리스 수도인 아테네의 수호신이 됐을까?

그리스신화에 따르면 그리스의 새로운 도시를 보호하는 수호신을 결정하기 위해

아테나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경합을 벌였다.

포세이돈은 아티카의 첫 번째 왕이자 새 도시를 세우고 있는 케크로프스에게 찾아가 도시를 자신에게 바치고

‘포세이도니아’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그리고는 삼지창을 들어 바위 위에 내리꽂자 바닷물이 흘러넘치는 샘이 솟아났다.

 

포세이돈이 사라지자마자 케크로프스 앞에 아테나가 나타났다.

그녀 역시 도시를 자신의 이름을 따서‘아테네’로 불러달라고 요구하며

“아름다움과 지식의 발상지로 예술, 문학, 과학이 융성할 것이며,

바로 이곳에서 자유의 정신이 퍼져 나가 세상 깊은 곳까지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테나가 창으로 바위를 내리치자 그 자리에서는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올리브 나무가 솟았다.

아테나는 열매는 허기를 채워주고,올리브 기름은 어둠을 밝혀주며,

나뭇가지는 평화의 상징으로 쓰일 것이라는 말도 전했다.

 

새 도시의 수호신 자리를 놓고 두 신 사이에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포세이돈의 삼지창과 아테나의 긴 창이 불꽃을 튀기려는 순간 제우스가 나타났다.

제우스는 신들에게 의견을 물어 수호신을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신들의 투표에서 아테나가 승리를 거뒀다.

 

그리스 문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신화를 빼놓고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남긴 문화 유적은 신화와 관련된 것들이 너무나 많고 많기 때문이다

그리스 여행을 떠나기 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더불어 신화 관련 서적을

7권 정도 읽었지만 신화 관련 내용이 너무 많고 복잡해 여행 내내 이해의 벽에 부딪히곤 했다

 

 

파르테논의 메토프(metopes)는 기둥 사이에  2개씩 전시되어 있고

프리즈(frieze)는 그 뒷쪽 아래에 전시되어 있다

 

엘긴 마블(Elgin Marbles)

 

외교관이었던 영국인 토머스 부르스 엘긴이 19세기 초, 그리스가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를 받던 시절,

파르테논 신전의 벽면 부조 및 기둥 조각품 등 대리석 조각을 뜯어내 영국으로 가져갔다.

이는 트로이 전쟁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 등 인물 400명, 동물 200마리가 등장하는 웅장한 규모였다

1802년부터 10년에 걸쳐 신전 조각들이 차례로 영국으로 옮겨졌다.

약 10년간 그가 반출한 조각들은 253점에 이른다.

엘긴 경은 `오스만 튀르크 지배하의 그리스에서 문화재 파괴를 우려했다'고 변명했지만

시인 바이런 등 지식인들은 '탐욕스런 약탈 행위'라고 비난했다.

 

- 바이런,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

 

이것을 보고 울지 않는 자, 어리석어라.
너의 벽은 마멸되고, 허물어진 신전은 앗아져버렸다.
이 유적을 보호해야 할 영국인들 손에.
다시는 회복될 수 없으리라.
그것이 고향에서 강탈당했던 그 시간은 저주 받으라.
또다시 너의 불행한 가슴은 상처 나고
너의 쓰러진 신들은 북쪽의 증오스런 나라로 끌려갔도다.

 

시인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이 폐허가 된 신전을 방문한 후 남긴 것이다

그는 그리스의 민족 유산을 파괴하고 탈취한 엘긴 경의 비도덕성과 역사적 무책임함을 비판하면서

파르테논 신전 부속물들의 영국 반입을 비판했다.

그리고 1824년, 그의 나이 38세 때 바이런은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아테네에 도착했지만

열병에 걸려 곧 사망하고 만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이 영국 낭만주의 시인의 죽음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했던 그리스를 도와주지는 못했지만 그 혼란을 틈타 그리스인의 상징과 같은 파르테논 신전을

훼손하고 약탈한 영국 정부의 모습과 대비된다.

 

1816년 영국 하원은 엘긴 경이 문화재를 발굴, 선적, 인양, 보관하는데 들인 비용의 절반 가량인

3만 5,000파운드에 수집품들을 사들여 대영박물관에 소장했다.
1829년 독립한 그리스 정부는 현재까지 엘긴 마블스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문화부 장관을 지낸 배우 멜리나 메르쿠리 등이 앞장서 엘긴 마블스 되찾기 운동을 벌였지만

영국은 여전히 돌려줄 생각이 없다

 

박물관 3층에서는 파르테논 신전이 훤히 바라보인다

‘과거의 위대한 문명을 품고 미래로 도약하는 21세기의 그리스’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상징하고 있다.

아울러 대영박물관 등 세계 각지로 흩어져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파르테논의 조형물이

하루빨리 돌라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