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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1 그리스4<올림피아,나팍토스>

서영도 2022. 6. 10. 15:33

 

♣ 올림피아 박물관(Olympia Museum)

 

 

제우스 성역은 18세기 영국, 프랑스 연구자들에 의해 발견되었고

19세기 후반 독일 학자들에 의해 발굴되기 시작했으며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되었다

 

신전에 봉헌된 각종 제물들

 

이 놈들은 놈이 아니고 년이여라....

 

올림피아 성역에 봉헌되었던 각종 청동 투구

 

제우스가 가니메데Ganymede를 트로이에서 올림피아로 데려가는 모습의 테라코타.

5C. BC 작품으로 신전 박공면 꼭대기를 장식했었다

제우스는 가니메데에게 영원한 젊음을 부여하고 시종이 되게 했다

 

가니메데는 트로이의 미소년 왕자로 호메로스는 모든 인간들 중 가장 아름다운 미남이라고 묘사했다

신화에 따르면

가니메데에게 반한 제우스가 독수리를 시켜, 혹은 본인이 독수리로 변신해서 납치한 뒤 올림푸스에서 술을 따르게 했다 

이 술 따르는 모습을 본딴 별자리가 물병자리이다.

제우스가 가니메데에게 반한 이유는 사냥 후 목이 말라 연못의 물을 엎드려 마실 때

드러난 가니메데의 흰 허벅지에 반했다고 한다.

납치당한 것치고는 적응을 잘 했는지 제우스가 꽤 귀여워했는데

제우스는 가니메데에게 신들의 젊음과 영생을 유지할 수 있는 술과 음식을 주고

가니메데를 불로불사의 몸으로 만들어 신의 반열에 올려줬다.

그리고 가니메데 또한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면서 제우스에게 충성하였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동성애의 연원을 제우스 신과 가니메데의 사랑으로 삼고자 했었는지......

 

 

밀티아데스 투구

기원전 490년, 2차 페르시아 전쟁 때 아테네 시민의 숫자보다 많은 10만의 페르시아 대군이 침입했을 때

1만의 아테네군을 지휘한 밀티아데스가 마라톤 전투에서 미처 대오를 갖추지 못한 페르시아를 기습해 물리쳤다

마라톤의 기원이 된 전투이다

 

제우스 신전의 제우스(모형)

 

그리스 최고의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페이디아스가 제작했다. 

페이디아스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 황금과 상아로 거대한 아테나여신상을 만들어 전 그리스에 명성을 날렸지만 

시기와 모함을 받고 아테네에서 추방된 후 이곳 올림피아에 자리 잡고 제우스 신상과 숱한 예술작품들을 만들어냈다

 

430 BC에 건축한 것으로 13년 동안에 걸쳐 완성한 12.4m의 조각상으로

오른 손에는 니케상, 왼손에는 독수리가 장식된 왕홀을 쥐고 있는 모습이었다

고대 7대불가사의 하나였는데

AD 4세기 로마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진 후 475년 대화재 때 소실되었다

 

니케 여신

421 BC 파이오니오스Paionios의 작품으로 드레스를 휘날리며 먼저 왼발로 땅을 디디며 하강하는 모습이다

BC 421년에 메세니아인과 나우팍티아인이 스파르타와 싸워 승리한 후 제우스신전에 바쳐진 조각상이다

바람에 흐날린 옷이 허벅지와 발목에 휘감긴 모습의 묘사가 압권이다

이런 모습은 훗날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사모트라케의 니케 여신상의 모델이 되었다

 

 

어린 디오니소스를 안은 헤르메스(Hermes and the infant Dionysos)

 

340~330 BC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으로

1877년 헤라 신전에서 발견되었고, 높이 2.13m

헤르메스의 오른팔에는 와인의 신인 디오니소스와 연관된 상징물로서 포도를 쥐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디오니소스는 이를 잡으려 하고 있다

 

제우스는 헤라의 질투로 디오니소스를 임신 중이던 세멜레가 죽자 자신의 허벅지에서 디오니소스를 키웠는데

디오니소스가 태어나자 전령의 신 헤르메스로 하여금 님프에게 데려가 양육하게 했다

헤르메스가 디오니소스를 데려가는 도중 나무 둥치 위에 망토를 벗어 올려놓고 쉬는 모습을 묘사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117~138 AD

   

로마의 건국신화에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모습으로

늑대를 딛고 선 팔라디온 아테나 양 옆에 뱀과 올빼미가 새겨져 있고

좌우로 나이키 여신이 승리의 관을 씌워주고 있다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신화의 두 모티브를 한 장면에서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그리스 문명을 계승하여 로마화에 노력했던 로마 문명의 특성을 그대로 말해준다

 

팔라디움(palladium), 팔라디온(palladion)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라의 안전을 지켜주는 수호상이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성에 잠입하여 헬레네의 도움으로 팔라스 아테네를 찾아낸 후

다음 날 디오메데스와 함께 트로이의 팔라디온인 팔라스 아테네 상을 훔쳐나오고

트로이 목마를 이용해 마침내 트로이를 함락시켜 10년 동안 지속된 전쟁을 종식시켰다

 

제우스 신전의 동쪽 박공면 pediment

펠롭스와 오이노마오스 사이의 전차경기를 묘사했다

정중앙은 제우스이다,

왼쪽에 창을 든 오이노마오스 왕과 그의 왕비 스테로페가 서 있다. 

그리고 왕의 마부 미르틸로스가 무릎을 꿇고 전차를 끄는 네 마리 말의 고삐를 쥐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창을 들고 서 있는 펠롭스와 그 옆에 오이노마오스의 공주 히포다메이아가 서 있다. 

그 옆으로 시녀가 무릎 꿇고 마차를 대령하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펠롭스 신화의 등장인물들을 한 자리에 묘사한 것이다. 

 

 

펠롭스가 오이노마오스의 딸 히포다메이아와 결혼하려 하자  오이노마오스는 전차경기를 제안한다

오이노마오스는 장래의 사위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이노마오스는 아버지 아레스 신으로부터 받은 불사의 말이 끄는 전차 경기를 제안해

승리하면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했었고 이 방법으로 그동안 모든 청혼자들을 경기에서 죽였다

 

하지만 펠롭스는 포세이돈의 도움으로 날개 달린 말이 모는 황금 전차로 경기에 나섰다

다른 이야기로는 오이노마오스의 마부인 뮈르틸로스를 매수해 전차 바퀴의 축을 뽑게 하였다고도 하는데

아무튼 펠롭스의 승리였다

펠로폰네소스Peloponnesus는 펠롭스Pelops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제우스 신전 서쪽 박공면.

반인반수의 켄타우로스Centaurus와 라피타이인Laphithai의 싸움을 묘사했다

 

라피타이 족의 왕 페이리토오스(Peirithous)와 히포다미아의 결혼식 날

초대받은 켄타로우스 에우뤼티온이 술에 취해 라피타이의 여인들을 납치하려 하여 싸움이 발생했는데

이 잔치에 함께 초대받았던 페이리토오스의 친구인 아테네의 테세우스,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 등이 

합세하여 켄타우로스족을 물리친다. 

켄타우로스는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말인 반인반마이다.

 

중앙에 선 아폴론 신이 오른 팔을 들어 부정한 행위를 중단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바로 오른쪽에는 켄타우로스를 공격하는 테세우스, 라피타이 족에게 얼굴 부위를 공격받고 있는

켄타우로스가 부조되었다.

왼쪽으로는 켄타우로스를 공격하는 페이리토오스, 데이다메이아를 납치하려는 켄타우로스족 에우리티온(Eurythion)이

배치되어 있다

이 전설은 그리스가 문명화되어가는 과정에서 그리스 민족이 야만족들의 도전을 이겨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 올림피아 성역

 

제우스 신에게 바쳐진 성역Altis으로 기원전 10세기에서부터 기원후 4세기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이교의 잔재로 폐지하기까지 제우스 신 숭배의 성소였다

`올림피아`는 숲이 우거진 이곳의 계곡을 일컫는 말에서 유래했다

 

 

올림피아 성지

 

Palaestra

팔라에스트라는 레슬링, 격투 등 경기가 열려는 장소이다

 

gymnasium(체육관)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김나스에서 유래한 말인데

김나스는 누드란 의미이다

고대 올림파아 경기에서 옷을 모두 벗고 운동 경기를 했다고 하여 생긴 것이다

 

옷을 모두 벗고 올리브유를 온몸에 바르고 경기를 했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또한 부상을 입거나 상처에도 올리브 기름을 발랐다

 

그리스인들의 복장이 헐렁한 망토(히마티온, himation)같았으니 경기를 위해서는 당연 벗어야했다

이를 반영하듯 고고학 박물관 전시물 중에는 운동 후 올리브유를 긁어내는 긁게같은 도구가 다수 보인다

 

 

페이디아스 공방

이곳에서 발견된 잔에서 페이디아스의 이름이 적혀있었기에 페이디아스의 공방으로 밝혀졌다

페이디아스는 이곳에서 고대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제우스 신전의 제우상을 조각했다

5세기에는 바실리카 비잔틴 교회로 사용되었다

 

제우스 신전

 

기원전 472~457년에 엘리스의 리본이 건축했는데 당시 그리스 전체에서 가장 웅대한 도리아식 건축이었다

길이 64m, 폭 27m로 정면에 16개의 기둥과 양옆에 13개씩 기둥이 있었다

동쪽 박공면에는 탄탈로스의 아들로서 왕조를 세운 펠롭스와 피사의 왕 오이노마오스의 전차 경주 장면이,

서쪽 박공면에는 리피타이족과 켄타우로스족이 페이리토우스 결혼식에서 싸우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었고

메토프에는 헤라클레스의 12가지 노역이 조각되어 있었다

신전 내부에는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만든 고대 7대불가사의 하나인 금과 상아로 만든

제우스 신상이 있었다

 

올림픽 자체가 제우스 신을 숭배하여 제우스 신에게 재물을 바치기 위해 벌였던 축제였다

그리스에 기독교가 들어오자 제우스 신전도 수난을 겪게 된다

로마 테오도시우스 1세가 391년 카톨릭을 국교로 삼으며 그 외의 다른 종교 의식을 일절 금지했고

그의 손자 테오도시오스 2세는 더 강력한 명령으로 제우스 신전을 파괴한다

제우스 신상만은 콘스탄티노플로 옮겼지만 이 마저도 475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신전 건물은 6세기 대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패각석을 이용했는데 이는 아주 먼 옛날 이곳이 바다였음을 말해준다

 

 

필리페이온(Philippeion)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 때 건축을 시작해 아들 알랙산드로스 3세 때 완성된

원형의 톨로스로 올림피아 성역에서 신이 아닌 인간을 위해 지어진 것으로는 유일하다

이는 마케도니아 왕국이 그리스에 대한 지배력을 확고히 했음을 반영한다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아 전투에서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아테네와 테베 연합군을 물리치고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이 전투 이후 그리스의 폴리스 국가는 쇠퇴하고  북방의 작은 국가였던 마케도니아가 남하하여

그리스를 통일하게 된다

 

조각가 레오차리스Leochares의 작품으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

18개의 이오니아식 외부기둥과 9개의 고린도식 내부 기둥이 있었다

 

 

헤라 신전

7~6 BC에 건립되었고 그리스 신전 중에 가장 오래된 신전이다

도리아식 기둥

 

올림픽 성화는 헤라 신전 앞에서 채화한다

태양 광선으로 채화하여 올림픽 개회일에 맞춰 주경기장에 도착하는 게 관례이다

 

올림픽 성화 채화 장면

 

크립테(Krypte)

스타디온으로 들어가는 지붕을 씌운 원형문으로 오직 선수와 심판만 입장할 수 있었다

 

기원전 776년부터 4년마다 열린 올림피아 경기는 기원후 394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오스 1세가

이교의 잔재로 폐지하기까지 1170년 동안 열렸다

그리고  550여 년의 중단 시간이 흐른 후 1896년에 피에르 드 쿠베르탱에 의해 근대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처음에는 운동 선수만 참가했지만 후에 웅변가, 시인, 음악가들도 찾아와 제우스 신을 찬양했다

 

크립테를 들어서니 2,500년 전 벌거벗은 몸으로 이곳을 성큼성큼 뛰어다녔을 젊은이들의 땀 냄새가 코끝에 맴도는 것 같다

 

`올림피아제`는 고대 그리스인을 결합시켜주는 장치였고

또한 끊임없는 전쟁을 일시 휴지하는 정전이었다

세계평화의 상징이라는 올림픽은 결국 전쟁의 산물이었다

최초 엘리스와 피사 두 나라의 경기였지만 점차 확대되어 그리스의 모든 폴리스 국가가 참가했다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1년 내내 전쟁으로 인한 긴장 상태였지만 이 기간만은 일시적으로 정전을 했다

그들은 주신 제우스에게 경의를 표하려고 제우스 신의 성역에서 경기를 벌인 것이다

우승자는 제우스 신전 앞의 제단에 횃불을 점화했고 특별한 명예로 여겨졌다

 

 

그리스 내 올림피아 제전같은 큰 축제는

델포이(피티아 제전), 네메아(네미아 제전), 코린토스(이스트모스 제전)에서도 있었다,

아테네에서는 디오니소스 축제가 열렸는데 이는 음악과 문학 행사가 주였다

 

 

고대 올림픽 스타디온

스타디움의 어원인 스타디온 원래 길이의 단위로 올림피아에서 길이 192.27m였다

폭 28.5m로 45,000명을 수용했다

 

초기에는 달리기 한 종목뿐이었고 하루 동안만 열렸다

후에 일정도 5일로 늘어나고 원반 던지기, 레슬링, 전차 경주 등이 추가되었다

우승자에게 수여된 것은 올리브나무 가지로 엮은 둥근 화관(월계관)과 올리브유가 든 항아리였지만

우승은 개인적 명예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폴리스의 영광이기도 했다

 

 

올림피아를 보고 델포이로 이동하며 이오니아 해를 접한 파트라스의 식당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리오와 그리스 본토의 안티리오를 잇는 다리,

올림피아에서 델포이로 가기 위해서 통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 둘러야 하니....

 

나팍토스 Nafpaktos, 코린토스 만 연안의 도시

바다가 올리브 기름을 부어 놓은 듯 번들거린다

 

 

 

 

세르반테스 동상(Cervantes Statue)

 

나팍토스의 옛이름은 레판토Lepanto였다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가 스페인 보병 소속이었던 23세 때 기독교 연합의 신성함대와 오스만투르크가 붙은

1,571년의 레판토 해전에 신성함대 소속으로 참가한 적이 있었다

레판토 해전은 오스만 투르크가 베네치아의 속령인 키프로스를 침공하여 일어난 해전으로

신성 함대의 대승리로 오스만 투르크의 팽창을 저지한 전쟁인데

고대 기원전 31년의 악티움 해전 이래 가장 결정적인 해전이었다

세르반테스는 이 해전에서 총상으로 한쪽 팔을 잃고 알제리 노예 시장에 팔렸다가

지인의 도움으로 풀려난 후 작가로 전향했다

그의 대표작 돈키호테 속에 그의 군복무와 관련한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나팍토스 마을의 이곳저곳을 1시간 가량 기웃거리며 배회하다 이 카페에 들러 오렌지 쥬스를 한 잔 마셨다

코린토스에서 오렌지 쥬스를 맛본 후 그리스의 오렌지 생즙에 대한 급호감으로 완전 맛들였다

그리스에서 식품으로 싸고 질좋은 것 두 가지를 꼽으라면 오렌지와 올리브유일 것이다

 

차창 밖으로 바라본 올리브나무 밭

 

해발 900m에 위치한 아라호바(Arachova) 산중 마을의 호텔.

내일 일정인 델포이가 지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