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823 TMB 7 <Les Chapieux~Les Contamines>
구 간 : Les Chapieux ~ Les Contamines / 19.4 km / 9시간 13분
경 로 : Les Chapieux(1554m) ~ Refuge de la croix du Bonhomme(24443m) ~ La Croix du bonhomme(2481m) ~
Col du Bonhomme(2329m) ~ Refue la Balme(1734m) ~ Chalet de Nant Borrant(1499m) ~ Les Contamines(1145m)
< 상승 고도 930m / 하강 고도 1336m >
오늘은 레샤피외를 출발해 보놈므 고개를 넘어 레콘타민까지 가야 하는 다소 빡빡한 일정이 될 것이다
예상되는 육체적 힘듦보다는 사실 어제 필립과의 사소한 오해로 발생한 나의 감정적 질퐁노도를
다스리지 못한 게 더 힘든 하루였음을 고백한다
결국 반나절도 못 넘기고 화해하였지만 제 성질을 다스리지 못한 나의 잘못이 적지 않았다
당시의 상황을 감추기보다 간략하게나마 기록하여 자성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오며 필립에게는 오늘은 나의 페이스 대로 걸을 계획이니 일행들이랑 앞서 진행하라고 말했다
연우에게도 나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지 않게 표내지 말고 진행해달라고 부탁한다
레샤피외를 출발하자마자 길은 오르막길로 변하고 계곡의 그늘을 벗어나 아침 햇살로 붉게 물든 능선에
올라서기까지 한동안 가파르게 이어진다
나의 감정적 침울과는 아랑곳없이 아침 햇살을 받은 골과 능선은 구름 한점 없는 청명한 하늘 아래 눈이 부실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다
억센 남자의 근육질을 닮았는가 하면 어느 부위는 봉곳이 솟아 오르고 어떤 부위는 잘록하게 들어가 다소 육감적이기까지 하다
저멀리 보놈므 산장이 조망되고 어느 순간 일행들은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한곳에 오래 동안 앉아 이틀 전 쿠루마유르에서 구입한 TMB 상세지도를 꺼내 펼쳐놓고 오늘의 목적지 레콘타민까지 찾아갈 경로를 탐색한다
사실 TMB에서 길찾기는 지도를 잘 읽고 표지판만 잘 보면 그리 어렵지 않다
더구나 내게는 오랜 기간 지리산 속을 헤매는 동안 머리 속에 자연스레 장착된 gps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되고 있으니....
트레킹 시작 2시간 30분이 경과할 즈음 라크루아보놈므 산장(Refuge de la Croix du Bonhomme, 24443m)에 이른다
트레킹 중에 만나게 되는 산장들은 하나같이 ` 딱 이 장소다 `라고 할 만큼 군더더기가 없고 그 풍광이 절묘했다
이곳 역시 완벽하게 설치된 무대장치처럼 백미였다
목재로 지어진 산장은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경치에 둘러싸였는데 TMB여행자 사이에서 차와 케이크가 맛있기로
소문난 곳이기도 하지만 난 산장을 그냥 지나쳐 우측 능선으로 보이는 케른을 향하여 곧장 발길을 옮겼다
케른이 세워진 곳은 보놈므 교차점(La Croix du Bonhomme)으로 레콘타민, 푸르 고개 그리고 레샤피외 방향의 삼거리 갈림길인데
직진은 푸르 고개(Col des Fours)를 거쳐 어제 지나쳐 왔던 모테 산장으로 향하는 길이고
레콘타민으로 가려면 당연 좌측 아래로 내려서는 길을 택해야 한다
La Croix du Bonhomme
라크루와뒤보놈므에서 내려본 산장
레콘타민 방향으로 들어서 몇발짝 걸음을 옮겼을 때 뒤에서 연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필립이 뛰어왔다
필립의 선한 눈빛을 보며 연우의 진심어린 제언에 따라 세 사람은 극적인 화해의 의미로 어깨동무를 하였고
이후 나와 필립 사이에 흐르던 팽팽한 긴장감도 고드름 녹듯 스르르 녹아 내렸다......
라크루와보놈므에서 보놈므 고개까지는 약 40분 정도의 거리였다
초반은 물이 흐르는 내리막 돌길이었는데 필립은 전문 가이드답게 이 구간을 우회하여 안전한 곳으로 내려설 수 있도록 안내하였다
보놈므 고개(Col du Bonhomme)
보놈므(Bonhomme) 봉우리,
`bon hommme`는 `좋은 남자`란 의미이다
`좋은남자 봉우리` 아래의 나쁜(성질머리)남자와 좋은 여자,
어제같지 않게 연우의 얼굴이 다소 초췌해 보인다
일행이 전하는 바로는 이 순간 이후부터 연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니 아마 나의 일탈로 속을 끓였나 보다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Tumulus(2043m)
보놈므 고개에서부터의 하산길은 구불구불한 돌투성이의 거친 산길이 지그재그로 이어지며 내리막의 급경사를 보완하고 있었다
담 평원(Plan des Dames)에는 비바람에 목숨을 잃은 어느 영국 여인을 추모하려 지나는 사람들이 돌을 쌓아
커다란 케른(Tumulus)을 형성하였다
이 석조 건축물은 영겁의 세월 동안 다져진 산길을 오간 이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이 길에 인간적 정취를 부여하고 있다
케른이 세워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대개는 길이나 교차로의 방향이 불분명한 곳에 경로를 표시하기 위해 세워지지만,
산의 정상이나 길을 표시할 때도 세워지고,
이처럼 누군가를 기리기 위해 세워지기도 한다
케른 옆으로 편평한 지형의 풀밭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태양열을 그 누가 당해낼 것인가
까칠해진 입 속으로 물 한 통을 다 털어 넣었지만 도대체 갈증이 가시지 않는다
필립에게 우리 한국사람은 대개 점심 장소를 고를 때 그늘진 곳을 택하는데
넌 어찌 햋빛을 가릴 데라곤 눈을 닦고 봐도 없는 이런 곳만 고르느냐고 물어보는데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문화가 다르고 사고 방식이 다르니 로마에서는 로마 법을 따를 수밖에...
좌측으로는 들쭉날쭉한 침봉들이 모여 장관을 이루었는데 에귀유드라페나(Aiguille de la Pennaz, 2668m)의
험준하게 솟은 회색 바위는 전체적 풍경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난 긴팔 상의에 모자까지 착용한 상태에서도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를 피하지 못해 안절부절이었는데
젊은 청춘남녀는 민소매 차림에 모자도 없이 태양의 열기를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렬로 불타는 젊은 가슴에 이 정도 열기는 새발의 피, 조족지혈이다....
소로길 수준의 거친 돌길이 지루하게 이어지다 갑자기 넓어지더니 라발름 산장, 낭보항 산장, 알피누스 로지 등이 차례로 보였고
계곡에 이르러 협곡 위에는 다리가 놓였는데 로마 시대 때 건설된 Pont Romain이었다
라발름 산장(Refugio de la Balme, 1706m)
벌써부터 수통의 물이 떨어져 갈증을 느끼고 있었기에 라발름 산장에서 물을 받으려 했지만 산장은 어쩐 일인지
안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았다
다행이 물은 바로 아래 화장실 앞에서 구할 수 있었는데 그런 감로수가 없었다
낭보항 산장(Refuge de Nant Borrant)
Alpinus Lodge
로마 다리(Pont Romain)
로마인이 커다란 석판을 깔아 닦은 로먼 로드(Roman Road)는 이제 석판이 마모되어 석재 특유의 은은한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레콘타민에 내려와서 버스를 타려했지만 역시 여의치 않았고 숙소까지 약 1 시간을 더 걸어야 했다
해는 그늘없는 지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말 그대로 살이 익고 모든 것이 불꽃이 일듯 뜨겁다
풀과 들꽃들도 축 늘어져 안간힘을 쓰며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더위에 지친 난 레콘타민 중심부에 들어서마자 우선 슈퍼마켓부터 찾았다
달구어질 대로 달구어진 열기로 통구이가 되기 전에 빙과류의 냉기로라도 식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열치열은 이런 상황에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고, 턱도 없는 소리이다
연거푸 빙과 2개를 아작내고도 입맛을 다시며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
숙소 La Gelino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