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23 Tibet 2 <라싸 노블링카>
여행 둘쨋날 시안에서 티벳(시짱자치구, 西藏自治區)의 주도 라싸(拉萨)로 간다
시안 ~ 라싸 구간은 항공 이동이다
돌아올 때는 이 구간을 칭짱열차로 돌아올 계획인데 평균고도 4500m로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티벳고원을
열차로 달릴 때 창밖으로 펼쳐질 장관이 어떠할지 기대된다....
<티벳 여행허가증>
티베트를 여행하려면 중국 비자와는 별도로 ‘여행 허가증’이 필요하다
여행 허가증은 시짱(티베트) 자치구 여유국에서 주관하고 여행사를 통해서 발급받을 수 있다
현재 자유로운 개인적 티벳 여행은 불가능하다. 가이드를 동반한 여행사 상품을 이용하는 조건으로 허가증을 발급해 주고 있다
2008년 3월 라싸에서 티베트인들의 대규모 독립 시위가 발생한 뒤로 외국인 여행자에 대한 허가증 검사가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허가증이 없으면 포탈라 궁, 조캉 사원, 세라 사원 등 라싸의 주요 사원도 관람할 수가 없다
매표소에서 표를 판매할 때 허가증과 가이드 동반 여부를 검사한다
또 외국인은 라싸에서 시가체, 간체 등지로 가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가 없다
시안을 출발해 1시간 30분 비행 후 칭하이성의 성도인 시닝(서녕)에 착륙해 일단 비행기를 내려 잠시 대기한 후
다시 동일 비행기를 타고 2시간 비행 거리의 라싸로 향한다
동일 비행기로 중간 기착지에 내린 후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경우는 이번이 두 번째이다
과거 파타고니아 트레킹 때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남쪽의 푼타 아레나스로 갈 때 도중 푸에르토 몬토를 들러 간 적이 있었다
라싸 공항
고도 3650m의 라싸 공항에 내려 공항 청사를 빠져나오는데 보이는 하늘색부터가 다르다
티벳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이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선글라스를 끼는 일일 것이다
티벳의 햇빛은 너무나 싱싱하고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멋내기용으로 선글라스를 꼈던 사람일지라도 이곳 티벳에서는 실용성의 목적이 우선이다
고도가 높고 대기오염이 덜해서일테지만 하늘색은 그야말로 `란써(藍色)`이다
보송보송한 햇솜 뭉치같은 하얀 구름과의 경계마저 선명한 게 고소증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훗날 티벳을 기억할 때 나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지금 본 흰색의 구름과 청색의 하늘일 것 같다
라싸는 서장자치구의 구도(區都)로서 1,300여년의 역사를 지닌 티벳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이다
`신의 땅`이란 의미를 지닌 라싸는 종교와 속세 모든 면에서 티벳 제일의 도시이며
티벳인에게는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순례하길 원하는 성지이다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달라이 라마가 수세기 동안 거처했던 포타라궁과
오체투지하는 티벳인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죠캉사원 등이 모두 라싸에 있다
여행객이 티벳이라 부르는 이곳의 공식지명은 현재 서장자치구(西藏自治區)이다
이는 과거의 독립국가였던 티벳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는 중국의 한 자치구에 지나지 않으며
앞으로도 티벳의 독립은 없을 것이라는 중국의 야심이 반영된 지명일 것이다
티벳 민가
티벳 민가의 마당 한가운데 놓인 이상한 물체에 눈길이 간다
이게 뭐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 햇빛이 모여지는 곳에 주전자가 놓여있고 속에 담긴 물이 끓고 있다
티벳의 태양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기구인데 오목렌즈의 원리로 반사된 햇빛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정부에서 지원한 것이라고 한다
칭커주와 야크 버터차(쑤요우차 酥油)
티벳인의 주식인 칭커 보리로 만든 술과 야크 버터로 만든 차이다
티벳인의 주식인 짬빠,
칭커보리로 만드는데 야크 고기와 함께 티벳인의 주식이다
짬빠는 볶은 보릿가루에 야크 버터차를 조금 넣고 손으로 주무르듯 반죽하여 먹는다
짬빠는 말린 야크 고기와 함께 티벳인이 가지고 다니기에 아주 편해 유목 생활에 적합한 주식이다
이때만 해도 티벳에 도착한 지 얼마되지 않아 고소증 증세가 아직은 별로 없고 혈색도 괜찮다
목에 걸친 흰 스카프는 `하다`라는 것으로 티벳인은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반갑습니다의 의미로 걸어준다
노블링카(罗布林卡 Norbulingka)
노블링카는 "보석정원(Treasure Garden)"의 의미로 티벳에서 인위적으로 조성된 면적 35만㎡의 최대정원이다
포타라궁이 달라이 라마의 겨울궁전이라면 노블링카는 여름궁전으로 2001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755년 7대 달라이 라마 칼장 가초(Kelzang Gyatso) 때부터 만들어져 14대 달라이 라마가 1959년 인도로 망명하기 전까지
여름궁전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시민에게 공개되어 공원(People`s Park)으로 활용되고 있다
1959년 이곳에 머물던 14대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신변적 위협이 고조되자 마침내 인도로의 망명을 시도하는데
당시 이곳을 수비하는 군인으로 변장하여 탈출에 성공하였다
내부 촬용은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사진이 겉만 있고 속은 비었으니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14대 달라이 라마는 자서전에서 그가 어릴 적 포타라궁에서 노블링카로 옮겨오던 날이
1년 중 가장 즐거웠던 날이라고 회상했다
어린 나이에 달라이 라마가 된 후 포타라궁에서의 엄격하고 통제된 생활은 감옥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1958년 티벳 동부에서 일어난 무장봉기와 독립투쟁에 대해 중국은 무자비한 진압으로 맞섰다
12만 명이 학살되고 6천 개의 사원이 파괴되었다
불안한 정국이 지속되며 달라이 라마는 생명의 위협을 감지하고 1959년 3월 18일 밤 9시,
노블링카를 수비하는 병사의 복장으로 위장한 채 소수 인원의 호위를 받으며 탈출을 시도했다
중국은 노블링카를 향해 기관총과 박격포를 쏘았고 티벳인은 달라이 라마의 탈출 시간을 벌기 위해
몸을 방패삼아 맞섰는데 이때 티벳인 8만 7쳔명이 스러졌다
후진타오 주석에게 티벳은 특별한 곳이다
그는 1989년부터 1992년까지 티벳 서장자치구의 당서기직을 맡은 바 있었다
재임 기간 1989년 3월에 일어난 티벳 독립운동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았는데 반면 이는 그에게 기회이기도 했다
후진타오는 계엄을 선포하고 무력으로 처절히 진압했고 이때의 공로를 발판삼아 승승장구하였고 주석이 되었다
포탈라궁의 야경
노블링카를 보고 난 후 포타라궁 야경을 보러 가기 전 조금 이른 시각 저녁을 먹는다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火鍋)를 먹었는데 이게 문제가 되어 위장장애가 생겼고
밤새 복통을 앓은 결과 그럭저럭 버텨오던 고소증이 악화되는 요인이 되었다
어둠이 내리기 직전의 포탈라궁 모습,
포탈라궁 꼭대기에 오성홍기가 펄럭인다
티벳은 독립국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중국의 일부였으니 독립투쟁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중국은 1950년 티벳을 침공해 수많은 사상자를 낸 후 종교적 억압으로부터 티벳 인민을 해방시켰다고 말한다
해방되었다면 티벳인이 좋아라고 반길 일인데도 왜 수십만 티벳인은 죽음으로써 항거했을까
그리고 티벳인은 왜 인도의 다람살라에 그들의 망명정부를 세웠을까 ?
해방은 침략을 미화하는 좋은 방법일 수는 있을 것이다..
포탈라궁의 외벽을 비추는 불빛이 갓 들어온 모습이다
광장 중앙에서 보는 모습보다는 호수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 호수를 앞에 두고 바라보는 모습이 더 좋다
왜냐하면 물 속에 반영된 포탈라궁의 모습까지 더해져 전체적으로 더 멋진 광경으로 조망되기에...
호수 가장자리는 언제나 이미 삼각대를 펼친 전문 찍사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좋은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 간의 자리다툼 경쟁이 여기서도 아주 치열하다
약왕산 조경대(葯王山照景臺)
호수에서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서둘러 약왕산 전망대로 향했다
약왕산은 포탈라궁 광장에서 호수 반대쪽에 있는 높지 않은 야트막한 산인데
이곳의 촬영 포인트도 역시 호수에서처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사람 사이로 카메라만 겨우 밀어넣어 몇 장을 찍을 수 있었다
위안화 50원 속의 포탈라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