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쇠
얼마 전부터 고로쇠를 사러 갈 시간적 여유가 좀처럼 나지 않아 끌탕을 하던 참에
마침내 지난 주말 지리산을 찾아 하동 화개면 운수리의 석문 마을에 갔다
근래 총림이 되며 불사가 한창인 雙磎寺 입구에 雙磎와 石文란 각자가 새겨진 돌이
길 양쪽으로 서 있어 석문 역활을 하는데 바로 이곳에 위치한 마을이
이에 연유하여 마을 이름 또한 석문이다
고로쇠는 전하는 말에 따르면 뼈에 좋은 물의 의미인 骨利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통일신라 말, 풍수의 대가로 알려진 도선국사가 이른 봄 광양 옥룡사에서 坐禪을 끝내고 몸을 일으키는데
무릎이 제대로 펴지지 않아 옆에 있던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서려다 가지가 꺽이는 바람에 그만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때 꺽인 가지에서 방울방울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목을 축였더니 무릎이 펴지고
무릎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에 도선국사는 이 나무를 뼈에 이롭다는 의미로
골리수라 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또다른 이야기로는 고로쇠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 옛날에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이었던 바
신라와 백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화살을 맞은 한 병사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후
한참만에 깨어나 심한 갈증을 느꼈는데 바로 옆 화살이 꽂힌 나무의 줄기에서 수액이 흘러나와
이를 받아 마셨더니 상처가 신속히 회복되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고로쇠에는 마그네슘, 망간, 인 뿐만 아니라 칼슘, 칼륨 등 다양한 미네랄이 풍부하고
골격계, 위장질환, 신경통 등 성인병과 면역력 향상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에서 고혈압 및 비만 억제 효능 등이 있는 것으로 입증되기도 했다
석문 마을에 들어 고로쇠 물통이 보이는 집을 찾아 낮은 담장 위로 눈길을 주며 기웃거리는데
마당가 옆 허름한 창고 앞에서 고로쇠를 페트병에 담고 있는 할머니가 보인다
" 할머니, 올해 고로쇠물 어떻게 팔아요? "
" 1.5리터는 5,000원, 4.5리터는 15,000원에 팔아요"
" 할머니, 물맛 좀 볼 수 있습니까 "
할머니는 1.5리터 병 하나를 따서 종이컵에 따라 건네 주신다
고로쇠는 원래 초기에 나오는 물이 달고 맛있고 나중에 받은 물은 싱겁고 맛이 없는데
물맛을 보니 싱겁지 않고 달달한 게 내심 괜찮아 보여 할머니한테 슬쩍 흥정을 턴다
" 할머니 4.5리터 8통을 살테니 10만원에 주세요 "
제값이면 8통에 12만원이 되는데 나의 제안을 예상치 못했는지 할머니는 잠깐 머뭇거리는가싶더니
" 그렇게 가져가요 " 하면서
덤으로 시음용으로 뚜껑을 땃던 1.5리터 병도 그냥 얹어 준다
고로쇠는 오래 동안 지리산 자락을 들락거리며 매년 마셔오던 것이 이제는 습성이 되었음인지
한해라도 거를라치면 마치 뒤 보고 밑 닦지 않은 것처럼 꺼림칙해 도대체 마음이 개운치 못하다
사실 고로쇠가 정작 몸에 얼마나 좋은지 나 자신도 확신하지는 못한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노화의 과정이 쉬지 않고 줄곧 진행되지만
나무는 겨울철이면 모든 잎을 떨구고 裸木으로 간신히 버티고 서서 죽은 듯 보여도
매년 봄이 되면 움을 틔우고 싹이 돋으며 싱그러운 상태를 다시 회복하는 신비의 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움과 싹을 틔우기 직전 나무는 땅속 지면으로부터 수액을 빨아올려 체관을 따라 나뭇가지끝까지
필요한 영양분을 전달하는데 고로쇠물은 이 시기에 채취하는 것이다
고로쇠의 과학적 효능이야 차치하고라고 매년 나무가 회춘을 한다는 사실은 자명한 것이니
나무의 그런 회춘에 필수불가결한 수액을 마시면 왠지 나도 더 기운이 솟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마저도 든다
옛날 노인들은 늙어 기력이 떨어지면 `윗방아기`를 두었다
윗방아기의 사전적 의미는 "이미 생식 능력이 다한 늙은이가 회춘을 위하여 동침하는 젊은 여자"이다
요즘 시대가 변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변한만큼 윗방아기 두었다간 어디 제명대로 살지도 못할 것이다
고로쇠 수액에는 항산화 성분까지 풍부하다고 하니 차선으로 고로쇠물이라도 양껏 마시면
땅과 나무의 신비한 기운을 흡수하여 회춘에 조금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믿거나 말거나 만고 내 생각이다....
옛날에는 지리산 자락에서 민박을 하며 방바닥이 쩔쩔 끓듯 뜨끈뜨끈한 구들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짭짤한 오징어나 북어포를 어금니가 욱신거리도록 씹어가면서 고로쇠를 마셨지만
지금은 냉장고에 보관해두고 쉬어가며 천천히 마셔도 되니 옛날처럼 한꺼번에 배가 터지게 마시지 않아도 된다
현재 고로쇠는 방방곡곡에서 생산되다시피한데 난 지리산 자락에서 나는 물만 찾아 마신다
약 두 달 동안 마실 수 있어 2월에는 지리산 남부의 하동, 구례, 산청쪽에서 구하고
3월이면 고로쇠가 비교적 늦게 나오기 시작하는 지리산 북쪽의 함양, 남원을 찾아 간다
아무튼 요즘 집에 머물라치면 식탁 위에 놓인 고로쇠를 오며가며 부어 마신다
그래서인지 요즘 나의 배는 올챙이 배처럼 불룩하게 부풀어 출렁출렁 소리가 날 것만 같은 상태이기 일쑤이다
그러다보니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는데 시원스레 뻗는 오줌줄기를 볼 때마다
아주 만족스럽게 느껴져 어깨춤이라도 들썩거리고싶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