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220524 그리스7<테살로니키,린도스>

서영도 2022. 6. 10. 17:27

 

테살로니키

 

아테네 다음으로 큰 그리스 제2의 도시이자 마케니아 지방의 중심도시이다

기원전 마케도니아의 왕 카산드로스가 건설한 도시로 그의 부인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복동생인

테살로니케의 이름을 따서 테살로니카로 명명되었다

 

사도 바울이 선교 활동을 한 곳으로 이 도시의 교회에 보낸 두 통의 편지는 신약성서에

테살로니카 전서와 테살로니카 후서가 되었다

 

 

여행 일정이 아테네로 입국한 후 그리스 본토를 시계방향으로 돌았는데

아테네, 코린토스, 에피다브로스, 미케네, 올림피아, 델포이, 칼람바카, 베르기나 순서로 돌아 테살로니카로 왔다

이후 일정은 섬 투어로 린도스, 크레테, 산토리니를 보고 아테네로 돌아가 귀국할 예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 광장

 

아리스토텔레스 동상

신체 비율이 맞지 않아 하체 길이가 너무 짧은 게 그리스 조각상답지 않아 좀 모자란 사람처럼 보인다

실제는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으로 시대의 현자였는데 현대의 그리스인은 고대 그리스인보다 조각술이 떨어지는 것인지.....

 

테살로니키 항구

 

화이트 타워(White Tower)

 

테살로니키의 랜드마크이다

높이 34m, 직경 12m로

15세기에 베니치아인이 세운 도성의 일부였으며,

18~19세기 오스만 투르크 시대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는데

당시 이곳에서 대량학살이 벌어져 `레드 타워`(피로 물든 탑)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후 탑의 표면을 하얗게 도색하면서 화이트 타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비잔틴시대의 유물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오스만 투르크 시절이던 1826년 예니체리(정예병)들이 군부를 개혁하려는 술탄 마흐메드 2세에 반항하여

테살로니키를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며 이곳 감옥에 갇힌 후 처형되어

`Red Tower`, Tower of Blood`(붉은 탑, 피의 탑)으로 불렸었다

 

알렉산드로스 3세 동상

 

알렉산드로스 3세는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 2세가 암살되며 약관 20세의 나이에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고

재위 12년 만인 기원전 323년 동방원정 중 바빌로니아에서 사망했다

 

부케팔로스는 알렉산드로스 3세의 애마이자 명마였다

부케팔로스는 애초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난폭한 말이었다.

필리포스 2세가 처음 이 말을 구했을 때는 휘하의 맹장들이 길들여 보려다가 모두 형편없이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12세밖에 되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필리포스 앞에서 이 말을 보란듯이 길들였다

 

부케팔로스는 알렉산드로스를 동행하여 수많은 전장을 다녔는데 알렉산드로스가 인도를 원정할 때까지

수행하였으며 인더스 강 건너 히다스 페스 전투에서 전투를 치룬 다음 죽었다

사망했을때 나이는 거의 30살로, 말의 수명이 보통 25~30년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살 만큼 산 셈이다.

알렉산드로스는 크게 슬퍼하여 부케팔로스를 매장한 인도 땅에 부케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해 추모했다.

 

 

테살로니키 ~ 로도스 간 비행기로 약 1시간 거리이다

승무원 복장이 민소매인 것은 처음 보는데 유럽인들이 즐겨찾는 휴양지로 가는 느낌이 듬뿍들게 하기에 족하다

 

 

 

★ 로도스

 

 

도데카네스 제도의 가장 큰 섬이자 그리스의 2,000 여 개 섬들 중 큰 섬으로

그리스 섬 중에서 에게 해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해 그리스 본토로부터 363km 떨어져 있다

연중 300일 이상은 맑은 날씨이고 1년 내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드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섬은 돌고래 형태로 길이 79.7km, 폭 38km로 제주도의 약 3/4 정도의 크기이고

인구는 12만 정도이다

올리브와 포도주 생산으로 유명하고

일대의 중세 도시 유적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 린도스 아크로폴리스(Lindos Acropolis)

 

로도스 공항에 내려 곧장 린도스로 간다

숙소에 들기 전 린도스 아크로폴리스를 보기 위함이다

린도스가 로도스 섬의 동쪽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약 55km 떨어져에 있는데 길이 좁고 구불구불하다보니 

한 시간은 족히 걸린다

 

<로도스 지도>

 

로도스 섬의 전체적 모습이 돌고래 형태이다

북쪽끝이 로도스, 동쪽 해안 중간이 린도스

 

린도스는 기원전 10세기 도리아 인이 건설한 도시로서

그리스와 페니키아의 교류의 무역항으로 번창하여 기원전 8세기부터 중요 교역항이 되었지만

기원전 5세기 동쪽끝에 로도스가 건설되며 중심이 옮겨갔다

 

 

린도스 아크로폴리스

 

 높이 116m의 언덕 위에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 비잔틴, 성 요한 기사단, 오스만 투르크 시대에 걸쳐 이용된 성채이다

 

그리스에는 얼마나 많은 아크로폴리스가 있는 것일까

우문(愚問)이다

그리스에 오기 전까지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밖에 몰랐다

그런데 도처에 아크로폴리스가 있는 게 아닌가

아크로폴리스가 없다면 그리스가 아니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아크로폴리스 복원도

 

기원전 3세기 아테나 신전이 세워진 후 헤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 동안 신전 규모가 확대되었지만

중세 시대부터 사용되지 않으며 폐허로 변했고

14세기 요한 기사단이 들어와 오트만 제국의 침입에 대비해 방어용으로 신전 구조물 위에 성채를 세웠다

 

아크로폴리스에 오르기 전 미로같은 골목길을 따르는데 길 양옆으로 기념품 가게, 식당, 옷 가게 등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지중해 지역의 태양광은 어쩜 이다지도 강렬한 것인지 마치 날 화형이라도 시킬 기세로 작정하고 내리쬐는 것만 같다

이 가게들이 제공하는 그늘막이 없다면 아마 걷는 동안 새까맣게 타죽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걷는 내내 이리저리 상점들에 눈길을 파느라 오르막 길이 힘든지 모르고 걷는다

 

그늘막을 제공하던 상가들이 사라지고 갑자기 하늘이 열리는 순간

현대적 느낌은 사라지고 고풍스런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 아크로폴리스 입구에 이른다

 

삼단노선 군함의 부조(trireme)

 

삼단노선은 노가 상하의 삼단으로 설치되어 있어 기동력에 있어 발군의 전함이었다

기원전 2세기 로도스 출신의 조가가 피토크리토스 작품으로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계단 시작부 좌측 암벽에 새겨져 있다

로도스가 섬 도시국가였기에 교역이든 해전이든 해상 활동이 중요했음을 나타낸다

바로 앞 단 위에는 로도스가 승리한 해전을 기념해 세운 린도스 출신의 해군제독 아게산드로스 장군의 청동 동상이 있었다

 

피토크리토스는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사모트라케 니케(승리의 여신)상을 조각한 사람으로

사모트라케 니케 상은 로도스(당시 로마 소속)와 한니발 간의 전쟁이었던 에우리메돈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로도스 공방에서 제작해 에게해 북동부에 위치한 사모트라케 신전에 바쳐진 것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니케 여신상(Nike of Samothrace)>

 

 

좌측으로 고대의 계단 흔적이 남아있는 계단을 올라 아치형 출입구를 들어서면

시간은 엄숙한 중세의 시대로 들어서는 느낌으로 충만한다

성벽은 13세기 로도스 섬을 장악했던 성 요한 기사단이 쌓았다

 

 

성벽은 암반 위에 쌓아졌다

 

시대적 변화가 너무나 급작스러워 어리둥절하다

중세에서 고대로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하다

 

스토아

기원전 3세기 건축되었고 길이 87m, 42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졌다

 

프로필라이아

기원전 4세기 건축

 

 

 

아테나 린디아 신전(Temple of Athena Lindia)

기원전 4세기 건축된 도리아식 신전으로 가로 7.75m , 세로 21.65m 크기이다

 

신화에 따르면, 

린도스는 아테나 여신을 위한 최초의 성소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 린도스의 일곱 남자가 그녀에게 가장 먼저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렇다. 

언젠가 제우스는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그가 사랑하던 메티스 여신을 삼켰는데, 

그녀가 임신한 아이가 그의 머릿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난 탓이다. 

고통에 시달리는 부친을 보다 못한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날카로운 도끼로 제우스의 머리를 내리쳤다. 

쪼개진 머리 틈 사이로 아테나 여신이 솟구쳐 나왔다. 

탄생의 울음이 얼마나 컸던지, 온 세상이 쩌렁쩌렁 울렸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땅의 여신 가이아조차 벌벌 떨었다

 

그때 린도스의 남자 일곱 명이 나타나 아테나 여신을 위한 제단을 쌓고 희생 제물을 바쳤다. 

그들은 헬리오스와 로도스 여신 사이에 태어난 아들들이었다. 

울음을 그친 아테나 여신은 기뻐하며 그들에게 뛰어난 솜씨와 지혜를 선물했다. 

한편, 산고의 고통에서 해방된 제우스 역시 아테나의 탄생을 기뻐하면서 로도스섬 전체에 황금의 비를 뿌렸다. 

로도스가 풍요롭고 지혜로운 도시가 된 까닭이다. 

그 뒤로 이들의 제사는 온 그리스인들이 함께 즐기는 ‘범그리스 축제’(Panhellenic festival)가 되었다. 

아테나 여신을 수호신으로 섬기는 아테네에도 그녀를 위한 큰 축제가 열렸는데, 

사람들은 이를 ‘땅 위의 아테나 축제’라고 불렀던 반면, 

린도스를 중심으로 열린 로도스섬의 축제는 ‘바다 위의 아테나 축제’라고 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페르시아 원정 중에 로도스섬에 들렀다. 

그는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아테나 여신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그가 원정 내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이 아테나 여신의 가호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자, 

그의 후계자들도 줄줄이 이곳을 방문했다

 

고대 아테나 신전 옆 담벼락에 기대 앉아 연인과 함께 망중한을 즐기는 또다른 아테나 여신

아테나 여신은 처녀 여신이다

처녀가 아니면 내 말은 무효 처리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본 린도스 마을 풍경

 

쉐프가 하얀 치즈를 사각형 형태로 조가조각 토막내어 요리대 위에 수북히 쌓아 놓은 듯한 모습이다

 

사도 바울 만(St.Paul`s Bay)

 

사도 바울이 51년 전도를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그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나 들리게 되었다

아크로폴리스 정상에서 바라보는 사도 바울 만 조망이 압권이다

 

사도 바울 만

만의 전체 모양이 하트 형태이다

좌상부에 작은 건물이 사도 바울 교회(St. Paul`s Church)인데 웨딩 장소로 아주 유명하다

비치가 두 곳 있는데 세계 최고의 비치로 선정될 정도이다

윗쪽(남쪽 끝)은 인공적인 비치이고 아래쪽은 자연 비치이다

 

사도 바울 교회의 확대 모습

 

다소 멀리 떨어진 아크로폴리스 정상부에서 카메라로 잡았지만

차양막이 파라솔 형태부터 궁전 침실 형태까지 다양하다

 

이를 보는 순간

아~ 내가 왜 이곳까지 혼자 와서 이 청승을 떨고 있지?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더만......

 

극장

1,800명 수용

 

린도스 비치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금빛 모래사장의 해수욕장이 관능적인 유혹의 손길을 보낸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펼쳐진 해안선 곳곳의 크고 작은 만과 항구들은 어선과 함께 멋진 요트들을 품고 있어

 이곳이 휴양의 도시임을 말해주고 있다

 

로도스 호텔

 

다시 로도스로 돌아와 숙소 로도스 호텔에 짐을 푼다

근래 여행 다니며 본 호텔들 중에서 로도스 호텔처럼 사람들로 붐비는 호텔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인산인해여서 저녁 식사를 위해 뷔페식당에 들러서는 시간표를 받고 기다려야할 정도였다

기원전 3세기 헬레니즘 시대 때는 로도스가 경제적으로나 해상 무역면에서 아테네보다 더 번성했었다는 말이

단순 빈말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시기적으로 5월말임을 고려하면 휴가철 성수기인 7,8월은 발 디딜 틈이라도 남아있을까싶다

솔직히 난 이번 그리스 여행을 오기 전까지 로도스 섬이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그동안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 Le monde est un livre, et ceux qui ne voyagent pas n`en lisent qu`une page(이 세상은 책이다,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의 한 페이지 밖에 읽지 않는 사람이다) "라고 여행에 대해 언급했던

생오귀스뗑(Saint Augustin)의 말을 새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