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07 茶/지리산 둘레길
하동 차축제가 5월 4일부터 '하동세계茶엑스포' 형태로 열리고 있다
예전에는 화개골의 수많은 다원과 제다를 일일이 찾아 아침부터 밤까지 이동해야하는 번거러움이 있었지만
축제에 참가하면 한 자리에서 편리하게 다양한 시음을 해본 후 차를 고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일찍 출발한 탓에 차를 판매하는 사람들이 나오지도 않은 시각인 9시 전에 쌍계사 주변 제2행사장에 도착했다
1. 차 시배지
茶店이 열릴 때까지 시간도 때울 겸 차 始培地를 찾아본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흥덕왕 3년(828년)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신라의 김대렴이 차 씨앗을 가져오자 왕이 지리산 자락에 심게했다고 한다
2년 후인 830년 진감국사가 차를 쌍계사 주변에 번식시켰다고 전하는 바
이는 우리나라 차문화가 지리산 자락에서 시작되었다는 의미이다
이후 신라와 고려 때 흥성했던 차 문화는 조선조 접어들며 멸절의 수준으로 내몰렸다
조선 후기에 들어 유학자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와 多聖 초의선사가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차로 淸交를 나누며 차문화가 다시 중흥하게되는 전기가 마련된다
茶山 정약용(1762~1826)은 유배지 강진의 척박한 생활로 인해 신체기능의 저하를 초래했다
답답한 현실로 울화가 쌓여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는 체증이 되었다
차를 마셔야만 해결될 문제였다
다산은 아암 혜장(惠蘠 1772~1811)과 교류하며 자신의 답답한 체증을 치유하기 위해 차를 구하며
다수의 걸명소(乞茗疏) 등의 시를 남겼으며, 다신계라는 계를 만들 정도로 차를 사랑했다
秋史 김정희(1786~1856)는 화개차를 맛본 후 중국의 최고 승설차(勝雪茶)보다 낫다고 감탄했고
쌍계사 만허스님의 차를 얻고는 중국의 첫물 용정차(龍井茶)보다 좋다고 격찬했는데
추사는 차 문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란 차인이다
草衣선사는 대흥사 일지암에서 다선일여의 경지를 몸소 실천했고
1909년 강진 다산초당에서 多山 정약용을 만나면서 학문적 성취는 물론
한양의 식견있는 사대부를 만나게 되며 추사와의 평생지기가 된다
1830년 중국의 다서인 茶神傳을 지리산 칠불사에서 초록하고, 한국 차의 우수성을 이야기한 東茶頌을 지었다
2. 차시배지길

석문 마을 옆으로 차시배지길로 명명된 길을 따라 걸어보는데
멀리 지리 주능선 반야봉~명선봉 구간쯤으로 추정되는 곳이 바라보인다
한때 신발이 닳도록 누빈 곳인데 요즘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시간이 좀 걸릴 테지만 다시 설 수 있을 것이야

불두화(佛頭花)
꽃이 무성화이다,
즉 암술과 수술이 없는 꽃이란 의미이다
이는 불교에 귀의한 승려라면 色에 대한 일체의 마음을 끊어야하는 승려의 마음가짐을 반영한다고 하여
사찰에 많이 심어지는데 꽃의 모습이 부처의 두상과 닮았다고 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慧林농원
차시배지길을 따라 1.5키로 정도 걸어 오른다
도중 慧林농원의 차밭을 통과하는데 곳곳에 이렇게 멋진 풍광을
즐기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차맛을 배가 시키게끔 해두었다
"한번 앉아봐, 액자사진 찍어줄께"
3. 청운식당
차시배지길을 걷고 내려오니
11시도 안되었는데 뱃속의 걸신이 허기를 느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거늘
쌍계사 寺下村의 35년이 넘은 단골 청운식당에서 채첩정식으로 속을 채운다
안주인이 갓 시집 온 새색시일 적 민박을 하며 알았는 데 지금은 그때의 고왔던 모습은 오간데 없고
늙고 퉁퉁한 아지매로 변했으니 세월이 무상할 뿐이다
나 자신은 더 늙고 병들어 추해진 정도가 더할 테지만...
4. 茶 試飮 및 구입
하동세계茶엑스포 제2행사장에 현재 40곳의 茶店이 다원, 제다, 농원, 명차 등의 상호를 내걸고 참여해 있다
이들 중 그동안 마셔온 경험, 입소문, 정보 등을 토대로 10여 곳 정도를 시음해 보고 구입을 결정한다
이전에는 비발효차인 우전의 녹차만 구입했다
하지만 원래 녹차의 성질이 냉한 것이어서
요즘은 속쓰림이 덜하고 보다 따뜻한 성질을 가진 반발효 및 발효차를 반반씩 구입한다

매년 반복하는 일이지만 시음 후 色. 香, 味, 뒷맛 등을 세밀히 느껴보고 선택하려 하지만
나한테 맞는 최상의 차를 구입하기란 항상 어렵게 느껴진다
5. 다반향초(茶半香初)

"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
(정좌처다반향초, 묘용시수류화개)
고요히 앉은 곳, 차 반쯤 마시고 향을 막 사르네.
신묘한 작용이 일어나는 때,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
추사(秋史, 1786~1856)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구절로 현재 중앙국립박물관에 있다.
한양대 정민 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선원(禪院)이나 다관(茶館)의 기둥에 적혀 있던 대련(對聯)이지 싶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대련의 시구 해석이 분분해 100이면 100 사람 모두 해석이 다르다
그만큼 이 글이 함유하고 의미가 오묘하기 때문일 것이다
추사는 차와 불교에도 정통했던 인물이었다
정민 교수의 설명을 쉽게 요약하면
"조용히 앉아 차를 마시며 향을 피우다 보면
마음속에 오묘한 작용이 일어나 잡념이 가라앉고 정신이 개운해진다"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다산이나 추사가 귀양으로 인한 답답한 체증을 내리기 위해 차를 마셨던 이유와 상통하는 해석이 되는 것 같다
추사는 제주도 유배시절 차가 떨어지면 동갑내기 친구지간이기도 한 초의한테 차를 보내달라는
걸명편지를 수없이 보냈는데 배편이 마련되지 않아 늦어지거나 하면 익살스런 협박성 편지를 보내
애걸했는데 차를 받으면 그의 명필로 답례의 글씨를 보내곤 했다
이는 추사가 유배 생활의 답답함을 해소하는데 있어 초의의 차가 심신의 안정에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6. 지리산 둘레길(정금~가탄)
차 구입을 끝내고 2시 30분 경 정금 마을 입구에 주차를 하고 둘레길을 걷는다
참고로 정금 마을은 화개장터와 쌍계사의 중간 지점에 해당되는 마을이다
비가 계속 멈추지 않고 부슬부슬 이어진다
하는 수 없이 산행 스틱은 포기하고 대신 우산을 받쳐든다

gps트랙(청색 굵은 실선)
정금 마을 ~ 대비 ~ 대비암 ~ 백혜 ~ 가탄 ~ 정금의 원점회귀로 6 km, 3시간 경과의 코스

차밭
찻잎을 채취하기에 편리하게끔 참 탐스럽게 깍았다
관리하지 않으면 가지가 아무렇게 자라나 찻잎을 딸 때 불편할 수밖에 없다
화개천 주변의 산비탈에는 이렇듯 차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그런데 이런 차밭을 보고있노라면 마치 조용히 앉아 차를 마시는 것처럼
마음이 차분히 진정되며 포근해지는 듯한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오랜 기간 차를 마셔온 습성이 몸에 배이며 생겨난 현상일까?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화개동천의 야생 녹차나무는 거칠고 척박한 산비탈 등에 서식하기에 뿌리가 깊고 생명력이 강하다
이 지역 차나무는 뿌리가 지상 줄기의 3배 정도인 평균 5~6m까지 깊게 뿌리 내린다.
그 때문에 산의 지력을 최대한 흡수하기에 차 맛이 맑고 깊다
온갖 고난을 딛고 이겨낸 삶의 온화함이다.

일기일창의 찻잎 모습
채엽(採葉)을 할 때는 새순과 새순에 달린 잎을 딴다
새순은 깃발같이 생겼고 새잎은 창처럼 생겼기에
새순 하나에 새잎 두 개를 따는 것을 일기이창(一旗二槍),
새잎이 조금 컸을 때 제일 위의 잎만 따는 것을 일기일창(一旗一槍)이라 부른다

대비암
여기 대비암의 대비는 원래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락국으로 와서 김수로왕과 혼인한 허황후(許黃玉)를 말함이다
허황후는 수로왕과의 사이에 10명의 왕자를 두었다
첫째 태자는 왕위를 계승하고
2자, 3자는 어머니의 성을 이어 김해 허씨(許氏)의 시조가 되고
남은 4자~10자까지 7왕자는 허황후 오빠인 보옥(寶玉) 장유화상을 따라 지리산으로 와서
구름위의 집인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수도에 전념했다
장유화상은 왕자들의 도가 깊고 무르익어감을 보고,
달이 유난히 밝은 팔월 보름밤에 왕자들과 달을 보고 있었다
장유화상이 이때 별안간 힘껏 지팡이를 내리쳤다
7왕자는 모두 함께 손뼉을 치고 크게 웃었다
순간 7왕자는 대철(大徹)하여 부처가 되었다
이때가 수로왕 62년, 신라 파사왕 24년(103년) 8월 15일로
7왕자가 현모한 도를 깨쳐 일곱 부처님이 되니 칠불암이 된 유래이다
7왕자가 성불했다는 소식을 들은 김수로왕 내외는 멀리 김해에서 아들을 찾아 화개로 왔다
자식들의 성불사실을 확인한 수로왕은 자신이 머물던 곳에 범왕사(梵王寺)를,
허황후가 머물던 곳에 대비사(大妃寺, 일명, 天妃寺)를 창건했다

절마당에 한켠에 부처의 입상이 세워져 있다
대비암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에 `직지본래시불 대비암(直指本來是佛 대비암)`란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이 부처상을 두고 `직지본래시불`이라고 한 것인지 미처 관계자한테 물어보지 못했다
禪宗에 `직지인심본래시불(直指人心本來是佛,인간의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바로 가르키다)`란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따온 것이 아닐까
`대비암`을 굳이 한글로 표기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이 또한 다음에 다시 들리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오동나무
옛사람들은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었다
딸이 성장하여 시집 갈 때 그 오동나무를 잘라 가구장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난 아파트에 사니 오동나무를 심을 땅도 없고 딸도 낳지 못했으니 나랑은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일뿐이다

보라색 꽃이 한창인데 녹색의 숲과 대조되어 유난히 눈에 잘 띈다

요즘 이렇게 판넬로 지은 집들이 많이 보이는데 안전성이 어떠할지.....
잔디 마당이 잘 가꾸어져 있고 전경으로 화개천 넘어 불무장등 능선 조망이 멋지다

뒤를 따르던 아내가 좀 힘들다고 말할 쯤 오르막길이 끝나고 서서히 내리막으로 접어든다
빗물을 머금은 나뭇잎은 더욱 짙푸르고 윤기로 광택을 더하는것 같다
폭우만 아니면 우산 적당히 받치고, 적당히 비 맞으며 걷기 좋은 길이다

길섶의 정자
그다지 사람이 찾지 않는 정자이다
전세 낸 기분으로 앉아 다리쉼도 하고 비도 피하고 간식도 먹으며 한참을 쉬어간다

6시 조금 못되어 가탄 마을로 내려와 정금으로 회귀했을 쯤에야
비도 거의 다 왔는지 구름이 산위로 뭉게뭉게 올라가고 있다
일년치 茶를 넉넉히 장만했을 뿐더러 우중날씨일망정 걷고 나니 우중충했던 기분도 한결 맑아진다
마치 날개가 돋아나 羽化登仙한 신선이라도 되어 구름위에 올라 탄 마냥 가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