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1 털개회나무
일 시 : 2023. 5. 21.
꽃향기에 취하고 싶었다
내 몸과 마음에도 향기가 배이도록
아주 감미롭고 진한 꽃내음에 취해 하루쯤 걷고 싶었다
다름아닌 털개회나무의 향기를 떠올렸고
지리산 노고단 아래 문수대 부근으로 가면 가능하리라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털개회나무를 개량해 만든 원예품종이 미스킴라일락이고
이 또한 향기가 엄청 암팡지다고 `미스킴라일락` 제목의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전날 토요일 저녁 7시경 홀로 지리산 뱀사골 반선으로 차를 몰았다
숙박을 하면 다음 날 산행 피로를 줄일 수 있고 귀가 시 차량 정체를 피할 수 있을 뿐더러
성삼재 주차장 이용이 아침 일찍 도착하지 않으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9시 30분 경 숙소에 들어 다른 할 일도 없고 적요한 밤 잔잔히 들려오는 계곡 물소리를 자장가 삼아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4시 30분 알람 소리에 일어나 5시 경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하니
여명의 빛이 희붐하게 밝아오며 반야봉 특유의 둔중한 형태가 드러나고 있다
차 안에서 미리 준비한 햄버거로 아침을 먹고 산행 채비를 마무리한 후 산행을 시작한다
노고단 정상을 경유하려 했기에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에서 노고단 탐방 예약은 사전에 했었다
gps트랙
경로 : 성삼재 주차장 ~ 노고단 정상 ~ 문수대 ~ 성삼재 주차장
9 km / 6 시간
노고단 산장은 한창 공사 중이고
노고단 고개에서 노고단 정상에 이르는 길은 덱크길인데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탐방이 가능하다
고도가 높으니 아침 기온이 제법 쌀쌀한데 바람마저 불어대니 오싹한 게 여름은 아직 저멀리 있는 딴세상이다
노고단 정상(1,503m)에서 바라본 모습들.
왕시루봉 능선
이른 아침 낮은 각도로 비추는 햇살을 받은 산사면은 밝게 빛나고
반대 사면은 어두운 반음반양으로 인해 굴곡진 산세가 더욱 두드러져
마치 억센 근육질의 남성마냥 강인하고 힘이 넘쳐 보인다
한참을 넋놓아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침 추위로 얼어붙은 하초에 불끈한 힘이 뻗치는 듯하다
차일봉 능선
구름 바다, 雲海
흡사 수많은 섬들이 운해에 떠 있는 多島海 의 모습과 진배없다
반야봉 방향
"지리산,
너를 보면 내 마음 속 피가 끓는다"
다른 말이 더 필요하랴, 이 한 마디면 족하다!
반야봉 우측으로 `ㄱ`자형의 삼도봉, 우측으로 촛대봉이 가늠되고
저멀리 구름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의 천왕봉이 조망된다
지리 주능 노고단~천왕봉 구간 28km가 제아무리 유장해도 내 눈 시야를 벗어나지는 못하리.....
상, 광양 백운산 능선
중, 불무장등 능선
하, 왕시루봉 능선
진달래.
노고단 진달래는 고도가 높으니 키는 작으나 꽃의 색깔이 아주 붉어 그야말로 진분홍빛이다
크림슨 레드(crimson red)는 이런 색깔일 것이다
노고단 정상에서 주변을 조망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다
한기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을 즈음 금줄을 넘어 샛길로 들어선다
적발 시 벌금 1회 20만, 3회 50만의 경고문은 본 적이 없는 것으로 시선처리하고.....
오갈피나무
음나무
줄기에 돋아난 가시를 볼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 기분이다
과거 계곡쪽을 향해 무작정 산사면을 헤치고 내려설 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려는 순간
얼결에 옆의 나무를 잡았을 때 엄청난 고통에 자지러지게 놀라며 손을 떼어보니 요놈이었다
그날 이후 두번 다시 그런 식으로 조우하지 말자고 싹싹 빌었다
샛길로 들어선 이후 왕시루봉 능선에 이르기까지 예전같으면 털개회나무 꽃이 제법 피어있어야 했다
나름 꽃이 만개할 시기를 예상하고 왔는데 어쩐 일인지 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온난화의 생태변화로 털개회나무가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너무 늦게 찾아와 꽃이 이미 다 져버린 것일까?
올해는 벚꽃 등이 예년보다 일주일은 일찍 피었으니 지금쯤 만개 시기일텐데?
왕시루봉 능선에서 문수대 방향으로 들어서
산길이 한동안 돌너덜길로 이어지는데 찾는 사람이 없다보니 길이 묵을대로 묵어 있다
산길 보는 눈이 없으면 길을 제대로 잇기 힘들 지경이다
털개회나무 꽃봉우리
문수대에 이르기 전 산길을 찾느라 한동안 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걷는데
그동안 보이지 않던 털개회나무 가지가 눈앞에 불쑥 나타난다
그때서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모두 겨우 꽃봉우리만 맺은 상태이다
아니 감질나게 이럴 수가.....
꽃봉우리만 맺었거나 아직 꽃이 필 기미조차 없는 상태이다
뭔가 이상해 집에 돌아와 이전 산행 기록을 들춰보니 6월 초순경이 만개 시기이다
어찌 5월 중순 경이 만개 시기라고 생각했는지 참 어처구니 없는 판단 착오이다
2016년 6월 12일 산행 시 만개한 모습
2016년 6월 12일 산행 시 만개한 모습
문수대 입구
길을 잃지 않으려 산길에만 집중해 걷다 보니 문수대를 지나쳤다
스마트폰 지형도상에 찍힌 gps궤적을 보고서야 문수대로 다시 되돌아 간다
문수대 주변도 발길 흔적이 별로 없어 입구를 쉽게 놓쳐버린 것이다
빗장 걸린 입구, 곧 무너질 것 같은 퇴락한 구조물이 허허하고 을씨년스러울 뿐이다
단지 문수대 마당 한켠의 구상나무 가지에 걸린 붉은 등이 여기가 토굴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참당귀
폐허를 방불케하는 토굴의 뒷켠으로 돌아가니
샘에는 시원한 물줄기가 여전히 졸졸 흘러 나오고
샘 주위에 참당귀가 두 그루 정도 보인다
과거에는 앞마당과 뒷마당에 참당귀가 아주 많아 일부를 채취해
앞마당 돌위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쌈을 싸먹기도 했었다
문수대 돌의자와 구상나무
문수대 마당에서의 조망
산은 골을 안고,
산은 또다른 산을 업고,
능선은 농염의 색채가 점점 옅어지더니 가뭇없이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딱총나무
잎을 비비면 화약 냄새가 난다고 하기도 하고
가지를 부러뜨리면 `딱` 하고 딱총 소리가 난다고 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딱총나무 가지 하나를 꺽어 정말 딱딱 소리가 나는지 부르뜨려 보니 쉽게 꺽이며 비슷한 소리가 나는 듯하다
봄의 여린 가지가 아니고 가을 즈음 꺽어보면 `딱` 소리가 날 것 같아 이름에 수긍이 간다
몸 상태가 이전같지 않음에도 옛날 생각으로 걷다보니 이내 숨이 차곤해 자주 쉬어야 했다
노고단 산장으로 되돌아내려와 성삼재 주차장 도착으로 6시간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6월 초순 한번 다시 오면 좋겠는데, 가능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