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8 人彘(사람돼지)
`인체(人彘)`는 사람 `인(人)`, 돼지 `체(彘)`로 사람돼지를 뜻하는 말인데
사마천의 『史記』에서 황제와 군주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서술한 `本紀`의 `여 태후 本紀 ` 편에 나오는 단어이다
人彘는 처음 접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본기를 읽는 중 여 태후 편에서 그 잔혹성에 아연실색하며
한동안 本紀의 책장을 덮어두기까지 했었는데 한번 소개해보고자 한다
여 태후의 이름은 여치(呂雉)로서 한나라 고조 유방의 정식 황후로
유방이 미천했던 시절 함께 말을 타고 달리며 천하를 평정하는데 공헌을 했다
유방이 죽고 아들 유영이 자리를 이으니 혜제인데
여 태후는 어린 황제를 뒤로한 채 실질적 권력자로 행세한다
사마천은 유약하고 무능하며 꼭두각시에 불과한 혜제를 `본기`에 넣지 않고,
실질적으로 천하를 장악했던 여 태후를 넣었는데 이는 여 태후가 제왕의 명성은 없었어도
실제적 제왕의 지위를 누렸다는 현실론에 근거한 것이고 `여 태후` 편은 『사기』 전체에서 독특한 한 편이다
유방이 항우와 패권을 다투던 시절 팽성전투에서 항우에 대패하여 홀로 필마단기로 달아난 일이 있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우물 속으로 뛰어 들어 간신히 목숨을 구한 후 늦은 밤에 피로와 허기에 지친 상태에서
인근의 불빛을 쫓아 농원 척가장에 들리게 된다
주인은 황금갑옷을 걸치고 있는 사람이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고 후한 대접과 함께 딸에게 밤 시중을 들게 한다
이때 만난 여인이 척부인으로 훗날 유방이 황제가 된 후 정식후궁이 된다
천하가 평정된 후 나이 많은 여후는 항상 머물러 지키기만 할 뿐 황제를 만날 기회는 더욱 멀어진다
반면 척 부인은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 하게 되고
황제는 척 부인이 낳은 아들 유여의가 자신을 닮았다고 여겨
여후의 소생인 태자 유영을 폐하고 유여의를 태자로 세우려 하는데 대신들이 반대하고
장량의 계책이 더해져 태자를 바꾸지는 못한다
이에 강단있고 굳센 여후는 단순한 질투를 넘어 척 부인에게 원한을 품게 된다
고조 12년 4월에 유방이 장락궁에서 붕어하자 태자 유영이 황제가 되니 혜제이다
여 태후는 당장 척 부인을 궁녀를 유폐시키는 장소인 영항(永巷)에 가두고
유방이 자신의 사후를 고려해 미리 조왕으로 세워 내보냈던 척 부인의 소생 유여의를 불러들인다
사자가 세 차례나 가서 거듭 부르니 조나라 승상 주창이 사자에게 말하기를
" 古帝께서 제게 조왕을 부탁하셨는데 조왕은 아직 나이가 어립니다. 태후가 척 부인을 원망해
조왕을 불러 함께 죽이려 한다고 들었기에 저는 감히 조왕을 보낼 수 없습니다 "
태후는 매우 화가 나 조나라 승상을 장안으로 불러 들인 후 조왕을 다시 부른다
혜제는 사람이 인자한 데다 여 태후의 분노를 알았기 때문에 몸소 조왕을 맞이해 함께 궁궐로
들어가 숙식을 함께 하니 여 태후는 조왕을 죽이려 해도 기회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혜제가 새벽에 활을 쏘러 나가자 태후는 조왕이 혼자 있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짐독을 탄 술을 먹여 죽인다
이후 태후는 척 부인의 손과 발을 절단하고, 눈알을 뽑고, 귀를 태우고,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여
돼지우리에 살게 하며 `人彘(사람돼지)라고 이름 부른다
그리고 며칠 후 혜제를 불러 `사람돼지`를 구경하게 한다
혜제는 물어보고 나서야 그녀가 척 부인임을 알고 큰 소리로 울고
이 일 때문에 병이 나 1년이 지나도록 일어나지 못하는데 태후에게 사람을 보내 간청한다
" 이것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태후의 아들로서 천하를 다스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
혜제는 이후 음주와 음사에 빠져 정사를 팽겨치고 병까지 얻게 된다
혜제 7년에 혜제가 세상을 떠나자 태후는 발상하는 동안 소리 내어 곡할 뿐 전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당시 겨우 열다섯 살인 장량의 아들 장벽강이 侍中이었는데 승상에게 말하기를
" 태후께는 아들이 단지 혜제뿐인데, 지금 세상을 떠났는데도 소리 내어 곡할 뿐 슬퍼하지 않는데
승상께서는 그 까닭을 아십니까 ?"
승상이 이유를 물으니 장벽강이 대답한다
" 황제에게 장성한 아들이 없으니 태후께서는 당신 같은 대신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태후의 집안 여씨들을 장군으로 삼아 군을 통솔하게 하고 여씨들로 하여금 모두 궁궐에 머물며
정권을 좌지우지하게 한다면 태후는 마음이 편안할 것이며 당신들도 화를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에 승상이 장벽강의 계책을 따른다
태후는 흡족해 하며 그제서야 곡하며 아들의 죽음을 슬퍼한다
이로부터 여씨들의 정권이 시작되는데 다시 유씨의 정권으로 회복되기까지 8년 동안 지속된다.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기에 앞서 실권을 더 염려했던 여 태후는 분명 평범한 여성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척 부인을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잔혹스럽게 대했던 것이다
여 태후와 함께 중국의 3대 악녀인 측천무후,서 태후 모두 보통은 아니었으니
"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는 말이 결코 헛말은 아닌가 보다
자고로 아내는 오미구존(五味具存)하다고 했는데
이 말은
갓 혼인했을 때는 그 달기가 꿀맛이고,
살림 재미가 붙기 시작하면 장아찌 무같이 짭짤하고,
짭짤하던 맛깔이 쇠면 시금털털 개살구로 변하고,
맛이 시어질 고비부터 가끔 톡톡 쏘는 매운맛이 나는데 그 매운맛이 땅벌조차 당적할 수 없고,
매운맛이 없어지면 그때부터 뒈질 때까지 쓰기만 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껏 아내의 눈치를 그다지 보지 않고 간 큰놈으로 살아왔지만
이제 아내의 쓴맛을 톡톡히 볼 나이이기도 하니 아내 눈치도 슬금슬금 보고 비위도 잘 맞추며 살아야겠다
우리 모두 이제 중늙은이도 넘어선 나이에 어리버리하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
여자 조심하고 또 조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