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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30 비목

서영도 2025. 6. 30. 12:19

 
https://youtu.be/2phwXxkoWH4?si=XEzhusth34mZK2zz
 
유월의 막바지에 폭염주의보까지 내려진 한낮의 더위를 피해
어스럼의 저녁 무렵 아파트 뒷편 청량산 산책에 나선다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운동도 되고

더구나 밤 시간이면 한적해 즐겨찾는 산책길인데

대략 이틀에 한번꼴로 8~10 km 정도를 걷는다. 
 
고개를 드니 허공에 걸린 초생달이 오늘따라 무척 곱게 느껴진다
학창 시절 만났던 여인의 짙고 예뻤던 눈썹을 떠올리며 빙그레 속웃음 짓는다
뒤돌아 보니 어제 올랐던 무학산 위 하늘은 아직 남아 있는 노을빛에 물들어
수줍음 타는 여인네 얼굴 홍조인 양 발그레하다. 



 
걷다 보면 자연스레 임도 주변의 풀과 나무에 눈길이 가는데 오늘따라 한 종류의 나무에 유독 눈길이 간다
비목나무이다
줄기나 잎을 상처내거나 비벼보면 독특한 향이 나는 나무인데
코로 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 鼻木, 또한 비비면 향이 나기에 비비는 나무라고 한 게 변해 비목이 되었다고 한다.
 
 



비목 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게 한국인이 사랑하는 가곡 중의 하나인 `碑木`이다
碑木의 의미는 죽은 이의 신원을 새겨 무덤 앞에 세우는, 나무로 만든 비(碑)이다
어법상 `목비`가 맞을테지만 시적 문학적 표현의 허용이다.
 

6·25 전쟁이 정전되고 1964년 어느 날, 격전지였던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에서
수색대 소초장으로 근무하던 젊은 소위는 야간 순찰을 하던 중 애상에 잠긴다.
 
팻말 같은 썩은 나무와 녹슨 철모가 놓인 돌무더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주위에는 산목련이 달빛을 받아 아련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얗게 핀 산목련은 마치 무덤 주인을 애도하며 지키는 소복 입은 여인 같았다고 한다.
 
소위가 당시 느꼈던 먹먹한 감흥은 그로부터 약 5년 뒤에 희대의 명곡으로 승화되었다
바로 한국인의 3대 애창 가곡으로 불리는 '비목'이다
이 젊은 초급 장교는 한명희 전 국립국악원장이다.
 
한명희가 비극의 현장에서 느낀 생생한 감정을 그대로 쓴 시에
장일남 전 한양대 음대 교수가 가슴을 저미는 듯한 애잔한 멜로디를 붙여 역사에 길이 남을 노래가 탄생한 것이다.


 
비목(碑木)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樵童)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硝煙 (화약 연기)이 쓸고 간 깊은 계곡`은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생존의 전장이였음을 아주 생동감 있게 표현한 구절이다
실제 백암산 전투는 6·25 전쟁에서 치열한 격전지 중의 한 곳이었다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고향과 樵童(나무 하는 아이)를 그리워하는 돌무덤 주인의 마음은
비목 마디마디에 이끼가 되어 맺혔다고 노래는 전한다
또 홀로 남은 '적막감에' 울고 또 울다 지친 끝에 그 서러움이 돌이 되어 쌓였다는 사연을 노래는 들려준다.
 
노래의 배경지인 화천은 나의 출생지이다
당시 아버지는 화천에서 중대장이었고 난 유년기의 대부분을 산 속 독립가옥에서 보냈다
그러니 화천은 나의 어릴 적 오랜 기억 속의 고향이다

화천은 또한 나의 길지 않은 군생활에서 초임지이기도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무척 화천에 가보고 싶다
군 시절 나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자전거 타고 그때처럼 파로호에도 가고 북한강변 길 따라 춘천에도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