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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11 돌로미테 8 <Alta Via No 1 Trekking Day 6>

서영도 2018. 7. 21. 11:04

 

 

경 로  :  스타울란자 산장(Rifugio Staulanza / 1766 m) ~ 카제라 베스코바(Casera Vescova / 1734 m) ~

            카제라 피오다(Casera Pioda / 1825 m) ~ 콜다이 산장(Rifugio Sonino al Coldai / 2132 m) ~ 티씨 산장(Rifugio Tissi / 2250 m)

 

거 리  :  10.8  km

 

시 간  :  6시간

 

 

 

 

<gps 트랙>

 

 

 

그동안 AV1 (알타비아 N.1)을 걷는 내내 다인실의 bunk bed에서만 잠을 잤는데

지난 밤은 각방마다 욕실이 갖춰진 호텔급 산장의 뽀송뽀송한 침대에서 아주 쾌적한 밤을 보냈다

그렇다고 다른 산장에서는 잠을 설쳤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라가주오이 산장의 14인실에서도 수면은 그다지 방해받지 않았다

잠간 잠자리를 뒤척일 때면 갖은 데시벨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전혀 없고 심적인 평정이 유지되는데다 하루의 트레킹을 마무리 한 후의 나른함은

숙면을 취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수면제였다

그러니 귀마개를 세 세트까지 준비해 왔지만 한 번도 사용할 일이 없었다

 

 

 

 

출발하기 전 한 포즈,

 

 

 

 

트레일은 산장 앞 도로를 따라 내려가 곧 풀밭길로 접어든다

마지막으로 뒤돌아 본 펠모는 여전히 구름 드레스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렁치렁 걸치고 있다

몸매에 자신이 없으니 그러려니 생각하고 미련을 두지 말자....

 

 

 

 

구름이 아직 물러나지 않았으니 명자깨나 있는 봉우리들은 죄다 구별할 수 없다

현재 비가 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다행이고 더구나 햇살이 나고 있으니

오후에는 만족할 만한 조망을 기대해도 될 것 같다

 

 

 

 

온갖 물감을 흩뿌려 놓기라도한 듯 칠월 초 알프스의 초원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화원이 된다

햇병아리의 솜털을 닮은 노랑, 새색시 볼에 바른 연지분 같은 분홍, 갓 움을 틔운 새싹의 연두빛,

갓 뽑아낸 무 속같은 흰색 등 갖가지 색들의 꽃이 어우러져 화려하다 못해 눈부시기까지 하다

내 마음도 알록달록 꽃물이 드는 듯 화사해진다

 

 

 

 

 

 

산장을 출발해 삼십 분 정도 지날 즈음 간단한 식사가 제공될 수 있는 카제라 베스코바를 만난다

이후 한 시간을 더 걸어 카제라 피오다를 지날 때까지만 해도 수굿하던 길이 산비탈로 들어서며 치켜선다

WW1 당시 노새가 다니던 지그재그 길이 콜다이 산장에 이르기까지 근 한 시간 동안 이어지며 거친 숨을 몰아쉬게 한다

 

 

 

 

콜다이 산장에 이르기까지 트레일은 계속된 오르막이다

구름이 낮게 드리워 아직 조망이 터지지 않은 아쉬움 때문인지 발길이 좀 무겁게 느껴진다

전날 다소 긴 거리를 걸었고 기압이 낮아 몸이 가볍지 않은 이유도 더해진 것일 거다

 

 

 

<사진 오세화>

 

콜다이 산장이 멀지 않은 지점의 벼랑 바위에 선다

뒷쪽 아래로 졸도 알토(Zoldo alto) 도시가 보이고 그 뒤로 구름 속에 가린 것은 펠모이다

날씨가 좋다면 콜다이 산장으로 향하는 길 뒤로 동쪽 방향에 줄곧 펠모가 따라오지만

어제와 오늘 연이틀 펠모를 지근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은 따라주지 않는다

제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많이 욕심을 내었나 보다.....

 

 

 

<참고사진 인터넷 펌>

날씨가 맑다면 콜다이 산장 뒤로 펠모가 이렇게 보인다

 

 

 

 

<사진 오세화>

 

산장 물품 수송용 케이블카 시설이 보이고 이내 콜다이 산장이 나타난다

사진상 산장 좌측으로 치베타가 있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운해의 장막은 여전히 두텁기 때문이다

 

내가 알프스의 신이라면

돌로미테의 마술사가 되고 싶다

호령 한 마디에 구름을 마음대로 부리고 태양도 마음대로 호출할 수 있는 능력의 마술사이기를...

" 구름 이 녀석 당장 물렀거라, 태양 네놈은 냉큼 나오지 않고 뭘 꾸물대느냐 "

 

 

 

 

콜다이 산장(Rifugio Sonino al Coldai, 2132 m)

 

배낭, 스틱 등은 외부 장소에 보관하고 식당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구름이 걷히지 않고 바람이 부니 산장 외부는 기온이 꽤 쌀쌀하다

걷는 동안 된비알을 오르는 열기로 추위를 몰랐는데 산장 밖에서 잠시 어정거리다 오들오들 떨며 식당 안으로 뛰쳐들어간다

 

 

 

 

 

 

 

화장실 변기물을 내릴 때 줄을 부드럽게 당겨달라고 씌여 있는데 보는 순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소변 보면서 실실거리는 꼴을 누가 봤더라면 변태로 의심받았을지 모르지만

난 AV1를 걷는 내내 비아 페라타를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줄곧 떠나지 않았기에 한풀이라도 하듯 이때다 하고 힘껏 후려치듯 당겼다 

그런데 끄떡도 없더라....

 

 

 

 

식사를 마치고 콜다이 산장을 떠나며 뒤돌아 보니 펠모가 정상부만 빼꼼히 내민다

 

 

 

 

줌으로 당겨보고

 

 

 

 

콜다이 산장에서 포르첼라 콜다이(Forcella Coldai, 2191 m)를 넘어서면 콜다이호수가 나타난다

 

 

 

round-leaved pennycress

 

그냥 들꽃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  김춘수가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고 노래했듯이

가능한 이름을 불러주려 노력해본다

그냥 들꽃이 아닌 나의 꽃이 되면 아름다움도 더해지고 사랑도 하게 되는 것이다

 

 

 

 

 

콜다이 호수(Lago Coldai)

 

 

 

콜다이 호수는 피크닉 장소로 유명한데 멀지 않은 거리에 Alleghe 도시가 있다

" 여보, 나 사랑해 " 하고 여자가 묻는 듯하다

 

 

 

콜다이 호수를 찾는 사람이 많은 만큼 여러 갈래의 길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내가 가야할 길은 AV1인데 어느 길을 따라야 할까 ?

서쪽 방향은 Alleghe로 향하니 남쪽 방향으로 치베타 옆을 따라 난 길을 가야 한다

 

 

 

 

구름이 서서히 걷히며 치베타가 모습을 드러낸다

 

 

 

 

AV1 표시

 

 

 

 

오른쪽 아래로는 Alleghe가 호수를 끼고 한폭의 풍경화처럼 나타난다

 

 

 

 

콜다이 호수에서 포르첼라 콜 네그로(Forcella Col Negro, 2203 m)를 넘어간다

 

 

 

 

포르첼라 콜 네그로를 넘은 이후는 치베타를 좌측에 두고 간다

 

 

 

 

아직은 구름에 갖혀 있어 치베타의 압도적 당당함을 느끼기에 부족하다

 

 

 

 

저 앞의 산(Cima di Col Rean) 위에 오늘의 종착지 티씨 산장이 있다

 

 

 

 

장대하게 끝간데 없이 치솟은 치베타를 계속 바라보며 걷는데 갑작스레 후각을 자극하는 향기가 느껴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나라의 천리향(서향나무)과 비슷한 꽃을 피운 몇 그루의 관목들이 모여있다

꽃은 비슷하나 잎이 천리향에 비해 좀더 피침형인 게 다르다

 

한국인한테서는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서는 치즈 냄새가 난다

특히 화장실에 들어가면 나의 예민한 후각에 그 냄새는 더욱 분명해진다

방향제로 이 꽃 몇 송이만 꺽어 장식해도 좋을 듯하다

 

 

 

 

 

 

 

치베타를 오르다 숨진 이의 넋을 기리고 있다

 

 

 

 

고도 2100 미터의 갈리길에서 바위에 붉는 페인트로 씌여진 표시를 보고 우측의 티씨 산장 방향으로 길을 바꿔탄다

 

 

 

 

 

티씨 산장이 있는 Cima di Col Rean을 향해 오르는 길 주변은 온통 꽃밭이다

그야말로 형형색색의 기화요초들이 만발하여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다

 

 

 

 

 알펜로즈(apenrose)

 

 

 

티씨 산장 주변의 천상 화원은 신들의 영역인가 보다

인간의 눈을 피해 놀던 신선들은 인간의 갑작스런 방문이 반갑지 않은지 치베타 북서벽의 만첩 병풍만으로는 부족해

구름을 불러 위장막까지 쳤다

 

 

 

 

치베타 북서벽은 높이도 대단하지만 워낙 넓게 펼쳐저 있어 나의 카메라로는 전체적 모습을 담을 수 없다

정상부를 덮었던 구름이 서서히 걷히며 치베타의 위용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티씨 산장(Rifugio Tiss, 2250 m),

치베타의 서쪽 작은 구릉인 치마 디 콜 레안(Cima di Col Rean) 위에

치베타 북서벽을 정면으로 볼 수 있게 지어졌다

아래로는 Alleghe를 내려볼 수 있게 참 절묘한 위치에 자리 잡았다

 

 

 

 

 

 

식당 내부

 

 

 

 

티씨 산장에서의 샤워는 5분 이용에 3유로 비용의 코인을 사야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코인 하나로 해결하지만 난 AV1 동안 유료 샤워인 산장에서는 늘 코인 3개를 준비했고 남으면 반환받았다

샤워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해치우기 싫었고 혹시 온몸에 비눗물이 묻은 상태에서 도중 물이 끊겨 찝찝해하는 상황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또한 땀에 절은 피로를 날리기에 안성맞춤인 샤워을 좀 느긋하게 즐기고 싶었던 것이다

 

 

 

 

산장에서 5분 거리인 Cima di Col Rean 정상에서의 조망은 티씨 산장을 찾는 이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덤이다

 

 

 

 

Cima di Col Rean(2281 m),

 

북서쪽 아래로는 알레게 호수를 품은 알레게 도시가 동화 속 풍경으로 펼쳐저 있다

알레게 호수의 고도가  천 미터이니 이곳 정상과의 고도차이는 무려 천삼백 미터 정도가 된다

물론 압도적 위용으로 천 미터를 치솟은 치베타 북서벽의 전체적 모습을 조망하기에도 최적의 장소이다

티씨 산장의 위치가 절묘하다고 말한 이유이다

 

구름이 완전히 걷히지 않아 서쪽 방향의 마르몰라다는 보이지 않고 있다

 

 

 

 

 

가슴 속 타오르는 정열은 꽃으로 붉게 피어났다

천인단애의 낭떠러지 끝에 위태롭게 매달리듯 붉은 꽃이 피어있다

어느 누구의 손길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일 게다

훼손되려는 순간 몸을 던져서라도 순결을 지키기 위함일 것이다

주머니 고름에 은장도를 품었던 옛여인의 비장감이 서려있다

 

 

 

 

 

 

오 일 전 올랐던 크로다 델 베코의 정상이 브라이에스 호수 위 천삼백 미터 이상의 낭떠러지였는데

이곳 Cima di Col Rean 정상도 역시 알레게 호수 위로 비슷한 높이의 낭떠러지이다

아래를 내려보려고 고개를 내밀다 아찔함에 오금이 저려 뒤로 물러선다

 

이번 AV1 트레킹 동안 크로다 델 베코, 피콜로 라가주오이, 누볼라우 그리고 이곳 치마 디 콜 레안 등

네 곳에서의 파노라마 조망은 각각의 환상적 풍경으로 오래 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만약 누군가 네 곳 중 베스트를 꼽으라면 절대로 말하지 않으련다

나만의 비밀 하나쯤은 남겨둬야 하니.....

 

 

 

 

 

 

치베타(Monte Civetta, 3220 m)

 

남북 방향으로 6 km을 뻗고 1000 m 이상 높이의 직벽이 4 km 까지 뻗은 산으로

알프스의 `Wall of Walls`로 불린다

치베타는 이탈리아어로 올빼미란 뜻이다

왜 치베타라고 부르는지 티씨 산장 직원한테 유래를 물어보니

바위가 검은 빛을 띄고 전체적 형상이 날개를 펼친 올빼미의 모습이라서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치베타를 다시 보니 수긍이 간다

 

 

 

 

 

일몰 시간에 맞춰 다시 Cima di Col Rean를 오른다

이곳은 돌로미테 AV1에서 일몰 광경이 가장 멋진 곳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남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서성거리며 일락서산의 서쪽 하늘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애석하게도 저무는 태양이 하늘, 돌로미테의 암봉들이랑 어울려 펼치는 천상의 유희는 아무리 기다려도 관찰되지 않는다

환상적인 빛의 쇼를 관람하지 못한 아쉬움만 가득 안고 산장으로 되돌아 내려온다

구름이 태양마저도 지우개로 지우듯 짓뭉겨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에 절망한 저녁이다

 

 

 

 

 

여행 중에 장소를 가리지 않고 틈틈이 책을 읽고 있는 외국인을 보곤 한다

나 역시 여행 준비물로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챙기는데 이번엔 돌로미테 안내서와 스마트폰에 저장된 일본어 파일만 준비했다

여행 경험이 많지는 않을지라도 책을 읽고 있는 한국인을 보는 경우는 드물다

문화의 차이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니면 과도한 입시경쟁으로 중고등학교 시절 너무 많은 책을 읽었기에 더이상 책을 읽을 기운이 남아있지 않은 것인지....

그동안 많이 읽었는데 여행 가서까지 읽을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면 할 말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