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성철 스임을 한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1987년 경 마산통합병원 군의관 시절이었는데 어느 수요일
병원장이 대민진료를 나가라 하기에 치과군의관이랑 둘이서
보안대 직원 인솔하에 합천 해인사에 투덜거리며 따라갔다
스님들 진료를 마치고 나서 당연 집에 돌아갈 줄 알았는데
보안대 직원이 대뜸 백련암 큰스님 만나러 가자고 하더만...
집에 빨리 돌아가면 좋으련만 쓸데없는 시간 낭비만 하는 것 같아 짜증이 좀 났지만
당시만 해도 보안대 끗발이 기세등등하던 때라
하는 수 없이 따라 올라갔지
보안대 직원 왈
" 다른 사람은 삼천배를 해야 만날 수 있는데 자기가 힘을 써놓아 만날 수 있는 거예요 "라
하기에 속으로 이 세끼
"또 설레발치고 있네" 했지
꼬부랑길을 한참 올라가 백련암에 닿으니 꼬봉 상좌가 나와 안내를 하더만....
방안에 들어서니 방바닥은 기름를 번들번들하게 먹인 온돌장판이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장식품이라곤 방 한 구석에 가지끝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자란 보리나무?가 큰 화분에 담겨 있을 뿐이었다
한동안 뜸이 지나고서야 큰스님이 안쪽에서 나오시더라고
첫눈에 몸집이 퉁퉁한 게 큰스님이라고 별 활동은 안하고 상좌가 주는 밥만 먹어 그런가보다 하였지
당시 난 큰스님의 법명이 뭔지도, 대중이 우러러는 성철 큰스님이란 사실을 전혀 몰랐기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데면데면했고 뭔 이야기를 들었는지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만은 형형해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구나 한 정도였다
이분이 성철 스님이란 건
시간이 꽤 흘러 스님이 돌아가시고 한참 후
"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요 " 란 말이 사람들 사이에 자주 회자되길래
한번 찾아보니 옛날 그 스님이더만....
그렇게 유명한 스님인 줄 알았으면
그때 인증사진이라도 남겼든지 아니면 기념될만한 글귀라도 하나 달라했을 걸.....
아니 당시 아무 것도 몰랐던 게 더 다행일지도 모르지
나도 좌우명 하나 말해달라고 했다가 자칫 원택 스님처럼 머리 밀었으면 어쩔뻔했겠나
평생 절밥 먹으며 꼿꼿이 사는 게 내 적성에는 안맞다고 생각하니까
난 한번씩 타락한 짓도 슬쩍 즐겨가면서 사는 게 내 체질인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