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
산토리니 섬은 그리스 에게해 남부에 자리 잡은 둥근 모양의 화산 군도로
그리스 본토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km 정도 떨어져 키클라데스 제도의 제일 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은 약 73 ㎢이다
기원전 1,600년 경의 화산 폭발로 칼데라 지형을 이루고 있다
산토리니(Santorini)란 이름은 13세기 베네치아 통치 시절 이곳 페리사 지역에 있던
산타 이리니(Santa Irini) 교회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이전 이름은 티라(Thera)였는데 12세기 말 이곳을 점령했던 도리아인들의 스파르타 왕 Theras에서 유래했다
현재 공식 명칭은 티라인데 산토리니 제일의 도시 이름이기도 하다

크레타 항구
이번 여행 일정에서 배로 이동하는 게 딱 한 차례 있는데
크레타에서 산토리니로 갈 때이다

선실 내부
난 개인적으로 배 타는 걸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오래 전 대마도 여행 시 풍랑을 만나 자칫 저승길로 갈 뻔했던 좋지 못한 기억 때문이다
그 일 이후 배를 타는 여행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지만 이번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막상 배를 타고보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스는 에게해에 약 2,000개는 넘는 섬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고대부터 이들 섬들은 주변국과 해상 무역의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고
해상교역을 통해 일찌기 이집트, 메소포타마아 문명 등과 교류하며 선진문명을 받아들여
그 결과 눈부신 에게해 문명을 이룩했었다
그렇게 수 천년 동안 축적된 선조들의 항해 경험이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을 테니 걱정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一切唯心造이거늘....

멀어져 가는 크레타를 바라보는 여인은 크레타에 무엇을, 아니 누구를 남겨두고 떠나는 것일까?


바다 색이 단지 푸르다고만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에게해를 `포도주색 바다`라고 했다
내가 지금 알고있는 포도주는 보라색에 더 가까운데 호메로스 살았던 기원전 700년의 포도주는 이런 색이었을까
여태 보지 못한 색깔이어서 나로서는 딱히 어떤 색깔이라고 형언할 수 없을 뿐이다

크레타 ~ 산토리니 항해 시간은 대개 1시간 50분 정도인데
어쩐 일인지 이날은 근 3시간나 걸렸다
산토리니로 배가 접근하면서 멀리 바라보이는 산토리니의 모습은
마치 망망대해 상에 우뚝 솟아오른 바위들이 원형으로 길게 놓여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바위 상부 표면마다 하얀 색으로 덮혀 있는 게 마치 갈매기들이 똥을 뽀얗게 엄청 싸질러 놓은 것처럼 보였다
배가 산토리니 항구의 접안 시설로 점점 다가가자 그때서야 갈매기 똥처럼 보였던 하얀 것들이
산토리니 사진에서 익히 보아왔던 집과 상점 등의 하얀 건축물이란 것을 비로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로도스, 크레타, 산토리니 세 곳 모두 엄청 큰 크르주 선들이 정박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역시 그리스는 관광으로 먹고 사는 나라이다
♣ 까마리 해변(Kamari Beach)
피라 남동쪽 10km에 위치한 해변으로 길이 2km 정도이고
모래와 자갈들이 모두 화산재의 검은 색인 것이 특징이다
관광,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산토리니는 홀로 와서 곧 둘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셋(임신)이 되기 십상인 곳이다



♣ 피라(티라) <Fira(Thira)> 마을
피라는 산토리니 내 중심지로 제일의 도시이다
마을 밀집도가 최고조에 달하는 덕에 산토리니 내부 사진 대부분이 이 피라 마을을 찍은 것이다.
시내 서쪽 절벽 바로 아래에 구 항구 및 그쪽으로 향하는 케이블카가 자리하고 있어
산토리니 본섬 외 다른 곳으로 갈 때는 이곳을 이용한다.
산토리니 마을 중에서 유일하게 대형마트가 있고,
산토리니 각지로 가는 버스가 이곳을 기점으로 이어져 이곳에 숙소를 잡으면 편리하다




산토리니는 화산폭발로 인한 화산재만 가득했기 때문에 나무조차 구하기 힘들었다
주민들은 화산에 의해 생긴 절벽 구멍들을 활용해 집을 지었다
섬 자체에 물이 부족해 포도 농사를 지어 여름에 수확한 다음 건포도를 만들어 한겨울 식량으로 삼으며 살아왔었다
1940년 말, 풍랑을 피하고자 유럽인들을 태운 유람선이 들어오면서 이 섬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얀 집들은 상업적으로 디자인한 게 아니라, 자신들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국기의 색깔을 따라
건물은 흰색, 돔은 푸른색으로 칠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구 항구로 내려와 올려 본 피라 마을의 서쪽,
분화구쪽은 경사가 아주 가파르고, 분화구 반대쪽은 당연 경사가 완만하다



건물이 경사면에 다닥다닥 붙어 들어서 있는 게 우리나라 달동네 모습과 진배없다
식당, 호텔 등 숙박시설도 예외는 아니어서 주차장같은 것은 아예 없고 옹색하기 그지없다
땅는 좁은데 관광객은 세계 각지에서 물밀듯이 몰려드니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호텔비는 대도시의 5성급보다 더 비싸기 일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하늘의 별따기이다
비싼 물가, 빈약한 편의시설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은 산토리니에 왔다는 그 사실 자체에 흡족해
불평을 잊어버리는 듯하다
" 살아 생전 에게해를 구경할 수 있는 자라면 행복한 것이다 " 란 말이 실제 적용되는 현장이다



사진상 산토리니가 거대한 분화구 형태의 칼데라 지형이란 게 드러난다
분화구 둘레는 500km, 직경 20~40km이다
산토리니는 원래 둥근 모양의 섬이었다
크레타에서 활짝 꽃피어난 미노아 문명이 북쪽 그리스 본토를 향해 뻗어 나가는 중요한 거점이었다
기원전 1600년 발생한 대화산 폭발은 기록상 최대 규모의 폭발이었다
이 폭발로 섬 중앙 부분이 송두리채 사라지며 반 토막이 나버렸다
크레타와 함께 미노아 문명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산토리니는 화산폭발로 순간 모든 게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그의 저서 《크리티아스》에 처음으로 언급하였던
하루 아침에 갑자기 사라진 도시 `아틀란티스`가 산토리니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엄청난 규모의 쓰나미는 크레타 섬을 덮쳤고 이는 크레타 미노아 문명의 멸망을 초래했다
이후 그리스 문명의 중심이 본토,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미케네 쪽으로 옮겨갔다
미노아 문명의 뒤를 이어 미케네 문명이 등장하게 되었다

위성 사진상 화산 폭발의 칼데라 지형이란 게 잘 드러난다
우측의 제일 큰 섬인 티라 섬인데 아기 공룡 둘리를 닮은 형상이다
♣ 이아(Oia) 마을
최북단에 자리한 마을이자 산토리니 제2의 마을로서
서쪽끝에 위치해 있어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물가(특히 숙박비)도 가장 비싼 곳이다

건물은 모두 흰색인데 푸른색의 돔은 교회 건물이다
지중해 지역의 햇살은 아주 강렬하다
따라서 흰색은 햇빛 반사의 목적인데 유난히 하얗게 빤짝거리는 것은 대리석 가루를 섞어 칠한 것이고
둥근 돔은 해풍의 저항을 줄이기 위함이다
물은 지하수를 구하기 힘들어 해수를 담수로 전환해 사용한다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건물,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파란색 지붕이
하늘과 바다, 작열하는 태양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사진 작가가 아니어도 좋다
그냥 아무렇게나 샤터를 누르기만 하면 화보 촬영이 된다
산토리니의 풍경 묘사는 언어의 낭비일 뿐 부질없는 짓이다
그저 " 와~~ " 하고 길게 뻗는 외마디 탄성만으로 족하다

베네치아 요새
이아는 일몰의 풍광이 아름다워 일몰 광경을 즐기기에 세계 제일의 명소에 속한다
베네치아 요새는 일몰 시각이 다가오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의 인파로 북적인다


오래 전 백두산 서파 종주를 한 적이 있었다,
백두산 천지를 에워싼 화구벽을 따라 걷는 트레킹인데 북한쪽인 동파는 접근할 수 없지만
중국쪽인 서파는 접근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산토리니의 칼데라 지형에 눈길이 갈 때마다 전체적 모습이 백두산 천지의 형태와 아주 닮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이라면 산토리니의 분화구가 훨씬 더 크고,
백두산 천지가 해발 2,190m인 반면 산토리니 분화구는 해발 0m의 에게해 바다로 채워진 점 등이 있지만.....



일몰 약 1시간 전의 베네치아 요새
일몰 시간이 다가오면 이아 마을 곳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좁은 골목길은 인파로 미어터지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하는데
이는 모두 일몰을 보기 위해 베네치아 요새로 향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



일몰 시각이 되면 인파로 막혀 베네치아 요새까지 가지 못한 사람들은
진입 길목의 골목길에 선 채로 일몰을 조망한다
모두가 서쪽 한 방향만 바라보면서 제자리에 선 목석이 되고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