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여행
찬바람이 불어 속이 여물고 맛이 오른 제철맛의 꼬막도 맛보고
나의 최애독서인 조정래 `태백산맥`의 무대이기도 한 벌교에 문학기행도 한번 해볼 겸 해서 간다
옛말에
"순천 가서 인물 자랑 말고,
여수 가서 돈 자랑 하지 말고,
벌교 가서 주먹 자랑 하지 마라" 라고 했으니 절대로 주먹을 쥐지 않을 각오로 벌교에 간다
벌교는 남해안에서도 특히 갯벌이 아주 넓은 지역이어서 옛부터 뗏목으로 다리를 놓았다
따라서 뗏목 筏, 다리 橋의 보통명사 벌교가 고유명사화 되어 현재 `벌교`라는 지명이 된 곳이다
《 `외서댁 꼬막나라`의 꼬막 정식》
아침 일찍 나섰기에 벌교에 도착하자마자 식당부터 찾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
메뉴는 당연 쫄깃쫄깃하고 맛이 올라 지금이 제철인 꼬막 정식이다
전라도에서는 홍어와 함께 참꼬막이 있어야 `걸게 장만했다`는 소리을 듣는다고 한다
꼬믹을 삶아 주고, 양념무침으로, 된장찌개로, 부침으로 등 다양하게 준다
밥은 당연 초고추장에 꼬막을 듬뿍 넣은 꼬막비빔밥으로 먹는다
`태백산맥`에서 염상구가 외서댁을 겁탈하고 내뱉는 말....
" 외서댁을 보자 말자 가심이 찌르르 하드란 말이야, 고 생각이 영축 없이 들어맞아 뿌럿는디,
쫄깃쫄깃한 것이 꼭 겨울 꼬막 맛이시 "
식당 상호에도 외서댁이 들어가는 '외서댁꼬막나라' 식당에서 꼬막비빔밥을 꼬득꼬득 씹어먹고 있으니
이 대사가 떠오르며 눈이 게슴츠레 해지고 입안에 침이 한가득 고이는 듯하다.....
《태백산맥 문학관》
우리나라에 조정래의 문학관이 2곳에 있다
`태백산맥`의 배경지인 벌교에 '태백산맥문학관`이 있고
`아리랑`의 배경지인 김제에 `조정래아리랑문학관`이 있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지만 글쎄 한강문학관이 생길런지는 모르겠다
오늘 보니 벌교의 관광지는 거진 태백산맥과 관련된 것처럼 보일 정도여서 `태백산맥`이 벌교를 먹여 살리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는 것 같다....
《벌교 지형도》
《지리산 지형도》
태백산맥 집필을 위해 4년 동안 사전조사를 하며 그린 지형도를 보니 사전 작업이 어쩜 이리도 철저하고 치밀했었는지...
《`태백산맥` 육필원고 첫장》
《`태백산맥` 육필원고 끝장》
《`태백산맥` 육필원고 전체》
4년 동안의 사전조사와 1983~1989년에 걸친 6년의 집필기간을 합하여 10년이 걸렸고
원고 매수가 총 16,500매인데 이를 쌓아 놓은 것이다
해방 전 이야기인 `아리랑`, 해방부터 6.25까지를 다룬 `태맥산맥`, 6.2 이후의 이야기인 `한강`을 완성하기까지
20년이 걸렸고 세 대하소설을 완성했을 때 작가는 `글감옥에서의 탈옥`이라고 했다
《현부자네 집》
제석산 자락에 위치해 있는데 한옥을 기본틀로 삼았으되 일본식을 가미한 형태인데 원래 박씨 문중 소유이다
`태백산맥`에서
정하섭이 빨치산 활동을 하며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무당 소화의 집을 은신처로 사용하게 되면서 자세히 묘사되는데
소화와 정하섭의 사랑의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소설 속 이들의 사랑을 표현한 한 대목을 옮겨보면
"그녀의 부끄러움을 이해하려 한 것은 그의 이성이었고,
그녀의 부끄러움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고자 한 것은 그의 남성이었다.
승패가 자명한 싸움에서 그의 남성은 이성을 여지없이 무찔러버렸다.
부끄러움으로 경련하는 그녀의 알몸 위에서 불붙은 그의 남성은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었고,
그 불길이 어느 한순간 수천수만의 불티로 쪼개지며 흔적도 없이 사그라져버렸을 때,
비로소 그의 이성은 패배의 먼지를 털며 소생했다.
무당인 그녀의 빼어난 인물과 고운 몸매와, 그것들은 슬픈 운명의 실로 꿰어진 염주 같았다"
《소화의 집》
`태백산맥`에서 무당 소화의 집은 이렇게 묘사된다
「조그만하고 예쁜 기와집, 방 셋에 부엌 하나인 집의 구조.... 부엌과 붙은 방은 안방이었고,
그 옆방은 신을 모시는 신당이었다」
이 집의 신당에서 정참봉의 손자 정하섭과 무당 월녀의 딸 소화가 애틋한 사랑을 시작하는데
결코 이뤄져서는 안 되는 고모와 조카 간의 사랑이었다
소화의 엄마인 월녀가 정 참봉을 만나는 상황이 태백산맥의 2권에 나오는데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상에 젖어 매번 눈을 지그시 감고
그 장면을 한참 머리속에 상상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압권이라고 생각한다
월녀와 정 참봉이 만나게 되는 상황 묘사는 대략 이러하다....
거친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저녁 무렵
정 참봉이 비를 피하기 위해 무당 월녀의 집을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삼 색깔 같은 암회색 어둠은
빠르게 내려 앉는다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월녀의 집에 머무르게 된 정 참봉은
옷이 비에 흠뻑 젖어 한기까지 느끼던 차에 먹은 저녁 식사가 제대로 소화되지 않아 얹히게 된다
한편 자신의 잠자리를 정 참봉에게 내어주고 신당에서 잠을 청했던 월녀는
안온한 웃음이 어린 점잖은 얼굴의 정 참봉 모습이 떠올라 잠을 뒤척이다 설핏 잠이 들었는데
밖에서 그녀를 부르는 정 참봉의 소리를 듣게 된다
정 참봉은 다급한 마당에 잠자는 월녀를 한밤중에 깨워 민간요법의 된장국물을 마시고
월녀는 트림을 하도록 뒤에서 정 참봉의 등을 쓸어내려 준다
이때의 상황을 책에서 그대로 옮겨보면
" 월녀는 등 쓸어내리기를 멈추고 일어섰다가 기우뚱 기울어졌다.
왼쪽 손이 정 참봉에게 잡혀 있었던 것이다.
서로 눈길이 마주쳤다. 월녀는 눈길을 떨구었다.
남자냄새가 정신이 아뜩해지도록 가슴속을 휘돌았다.
솔잎냄새 같기도 했고 치자냄새 같기도 했다.
월녀는 남자의 힘에 이끌려 주저앉았다.
촛불이 꺼졌다.
남자의 거친 숨소리에 빗소리가 섞여 들렸다.
남자의 손이 저고리섶을 헤치고 들었다.
월녀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아슴하고 아련할 뿐이었다.
남자가 진하게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거부하고 싶지도 않았다.
남자가 노를 젓는 대로 흘러가는 배이고 싶었다.
남자의 손이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뜨겁고 보드랍다고 느꼈다. "
이후 정 참봉은 한 달에 한두 번씩 다녀가는데
<내 고운 사람, 자네한테 짓는 죄를 어찌하나>
자신을 품고 참봉어른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만으로 월녀는
만족하며 몸도 마음도 나날이 새순처럼 젊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다 월녀는 임신한 것을 알고는 종적을 감추고
1년 반의 시간이 흐른 후 옛집으로 돌아온다
무당이 애를 안고 돌아오니 마을에서는 어느 놈팽이한테 홀려 봇짐을 쌋다가 돈 뺏기고 몸 뺏기고
혹덩이만 붙여서 버림받았다는 소문이 나돌지만 월녀는 참봉어른이 감쪽같이
감춰진 것만이 보람이고 다행이라고 여긴다
다시 월녀와 정 참봉은 재회하고
<이 사람, 내 죄를 이리 키워놓을 수 있는가.
자네의 깊은 속 어찌 모르리. 내 무슨 말을 더 할까>
정 참봉은 월녀를 끌어안고 목이 메이고 월녀는 그 품에서
비로소 쏟이지기 시작하는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정 참봉이 조끼주머니에서 꺼낸 한지에 두 글자가 적혀 있다.
딸의 이름 素花이다.
정 참봉은 소화가 열 살 나던 해 세상을 버린다
죽기 전 식구들에게 굿을 해달라고 하고 월녀는 불려간다.
월녀는 가시는 임의 저승길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짜내 춤을 추고,
정 참봉은 마지막 가는 길에 월녀를 만나보고 눈을 감는다.
숨겨야했기에 더 그립고 감추어야 했기에 더 안타까운 사람의 마지막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손 한 번 잡아볼 수 없고,
눈물마저 씹고 삼켜야 하는 기구함을 견딜 수 없어 월녀는 미친 듯이 춤을 출 수밖에 없고
그것만이 모든 것을 견뎌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월녀는 아버지의 존재를 알고자 하는 딸 소화를 심하게 혼내기만 할 뿐 결코 말해주지 않는다
양반과 무당의 신분 차이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였고
정 참봉 양반의 지체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더 말하지 않는 심지 굳은 여자였다
이 부분보다 앞서 1권에서...
이런 사실을 서로 전혀 모른 채 정하섭은 좌익활동을 하며
소화의 거처로 숨어들고 정하섭과 소화는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
어릴 적부터 정하섭과 운명적 사랑에 빠졌던 소화는
무당으로서 감히 품을 수 없었지만 정하섭의 애를 배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소망한다
월녀는 중풍으로 말도 못하고 누워있기만 한 상태에서
딸과 정하섭의 관계를 알아차리고 큰 충격을 받는데
작가는 그 이유를 이렇게 2권에 가서야 밝힌다
정 참봉의 손자 정하섭과 소화는 결코 맺어질 수 없는
고모뻘과 조카 사이였고 그 충격으로 월녀는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정 참봉에 대한 월녀의 가슴 저미는 사랑,
정하섭에 대한 딸 소화의 지고지순한 사랑,
사랑의 방식도 유전되는 것인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는 두 모녀 월녀와 소화,
이렇듯 소설 속 장면의 상상이 진한 잔영으로 남는 부분들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아 문득문득 불현듯 떠오르곤 하여
다시 책장을 펼쳐보게 한다
《중도방죽과 갈대》
일제 강점기 실존인물인 일본인 `중도`가 물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다
`태백산맥`에서
「저 방죽에 쌓인 돌덩이 하나하나, 흙 한삽 한삽 다 가난한 조선사람들 핏방울이고 한 덩어린디,
정작 배불린 것은 일본늠들이었응께, 방죽 싼 사람들 속이 어쩌겠소」라는 구절을 통해
당시 작업이 수월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보성여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 중심거리로 소위 `본정통`이라 불렸던 길에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 길은 현재 `태백산맥 문학거리`로 불린다
`태백산맥`에서는 토벌대장 임만수와 그 대원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남도여관으로 그려졌다
새로 부임한 계엄사령관 심재모가 임만수한테
「지금이 어느 때라고,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민심을 수습해애 할 임무를 띤 토벌대가 여관잠을 자고 여관밥을 먹어」라고 호통친다
<김범우의 집>
원래 대지주였던 김씨 집안의 집으로 조정래가 초등학교 시절 이 집 막내아들과 이곳에서 자주 놀았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품격 있고 양심을 갖춘 대지주 김사용의 집으로 그려지고 있다.
<홍교(횡갯다리)>
벌교포구를 가로지르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3칸의 무지개형 다리로서. 원레 뗏목다리였는데 1734년 선암사 승려가 건립하였다
소설에서
「김범우는 홍교를 건너다가 중간쯤에서 멈추어 섰다.....그러니까 낙안벌을 보듬듯이 하고 있는 징광산이나 금산은
태백산맥이란 거대한 나무의 맨 끝 가지에 붙어 있는 하나씩의 잎사귀인 셈이었다」
난 내용도 좋아야 하지만 문장력이 맛깔스런 글을 읽기 좋아한다,
그런면에서 조정래의 소설은 내게 단연코 으뜸이다
그래서 몇 년의 시간 간격을 두고 조정래의 대하소설을 번갈아 가며 읽고 또 읽는다
여태 1질 10권의 태백산맥을 5번, 12권의 아리랑을 2번, 10권의 한강을 2번을 읽었으니 총 94권을 읽은 셈이다
그외 김주영의 객주를 3번 읽었지만 20권의 박경리 토지 등등은 한 번밖에 읽지 않았다
나이 들어 기운이 쇠하면 남자의 양기는 위로 솟아 입으로 모인다고 한다
그러니 남자가 늙으면 쓰잘데기 없는 잔소리가 많아지는 것이다,
아내한테 지청구 듣기 전에 미리 벌교 가서 쫄깃쫄깃하고 쫀득쫀득한 꼬막 많이 먹고 양기 보충해 힘써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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