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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3 그리스6<메테오라,베르기나>

서영도 2022. 6. 10. 17:00

 

메테오라(Meteora)

 

메테오라는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의 의미이다

이 일대 수도원들이 400~500m 높이의 수직 바위 기둥 위에 위치해 불리는 이름으로

테살리 평원의 북서쪽 칼람바카에 위치해 있다

 

메테오라는 어떤 장소를 수행, 명상, 기도의 장소로 만든 건축적 변형 중

가장 독특한 사례이기도 한데 동방정교회에 속한다

비잔틴 제국 말기 테살리 평원을 지배하려는 오스만 투르크의 침입이 잦아지자

수도승들이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은둔하면서 건설되었다

 

10세기 무렵부터 동굴에서 수도하는 사람들(Hermitage)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13~14세기에 24개의 수도원이 있었지만

현재는 바를람 수도원, 성 아나파우사스 수도원, 성 스테파노스 수녀원, 루사누 수도원,

트리니티 수도원, 대 메테오라 등 6곳만 일반에 공개되어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루사누 수도원(Monastery of Rousanou)

 

바를람 수도원

 

(좌) 대 메테오라, (우) 바를람 수도원

 

(좌) 루사누 누네리 수도원

 

루사누 수도원(Monastery of Rousanou)

 

육체를 가혹하게 담금질하면서 원초적 본능을 억제하며 사는 삶,

세속을 떠난 폐쇄적인 삶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믿었던 수도사들이다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Monastery of st. Stephen)

 

트리니티 수도원((Monastery of the holy Trinity)

007시리즈의 `For your eyes only`의 촬영 장소이다

 

메테오라가 건축된 바위가 테살리 평원 지역에 우뚝 솟은 형태여서

해발 고도의 수치보다는 훨씬 높은 곳에 메테오라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절벽 위에 버티고 자리 잡은 수도원은 볼수록 신기하고 경외심마저 느껴진다

신에게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세속에서 한 발 더 멀어지기 위해서일까

 

손에 낀 장갑의 검지 끝부분을 잘려 있다

수시로 스마트폰도 만져야하고 카메라 샤터도 눌러야 하니 그런 것이다

 

바를람 수도원(Varlaam Monastery) 내부

 

6개 수도원 중 바를람 수도원을 방문했다

옛날에는 밧줄과 사다리로만 오르내릴 수 있는 은둔의 수행처였지만

현재는 암벽 사면에 설치된 잔교를 따른 후 가파른 계단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막상 내부로 들어서니 뾰족한 바위 위에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내부는 아주 넓고 모든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고행의 길을 나선 수도승의 은둔처라기 보다는 평범한 그리스 정교회의 한 교회와도 같다는 느낌이었다

 

 

 

★ 베르기나(Vergina)

 

그리스 북부의 작은 도시로 옛 이름은 아이가이Aigai인데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마케도니아 왕국의 최고 도시로 번성했던 곳이다

기원전 338년 그리스를 평정하고 소아시아를 정복하여 헬레니즘 문화를 전파한 알렉산드로스 3세의 나라,

마케도니아의 첫번째 수도였다

아이가이는 기록으로만 남아있을 뿐 실제 위치를 알 수 없었는데 1977년 필리포스 2세의 무덤이 발견되며

아이가이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발굴된 왕들의 무덤, 왕궁 터, 신전 터, 극장 터, 황금유골 상자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들을 통해,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 꽃을 피운 마케도니아 고도()의 화려한 문화를 엿볼 수 있다.

 

 

♣ 베르기나 고고학 박물관 <Museum of the Royal Tombs of Aigai(Vergina)>

 

1977년 마노리스 안드로니코스Manolis Andronikos가 Great Tumulus를 발굴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의 무덤(Tomb II)과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4세의 무덤(Tomb III)과 함께

다량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도시 국가 형태에서 제국 시대로 변천되는 과정의 유럽 문명을

반영하는 것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박물관 외부

 

필리포스 2세의 무덤군이 발견된 장소에 만들어졌다

무덤은 봉토형 고분으로 지름 110m, 높이 13m로

그리스 중남부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이다

이렇듯 왕족이나 호족은 적석 봉토형의 무덤을 만들었지만

일반인은 그리스 국가들의 무덤 양식 즉 작은 비석을 세웠다

 

아이가이 박물관에는 왕의 무덤에서 발굴된 다양한 부장품과 

왕성 및 주변에서 발굴된 마케도니아 왕국 시대의 무덤 비석들이 전시되고 있다

 

박물관 입구

 

1번 무덤(Tomb I)

 

석관cist 형태인데

필리포스 2세의 테살리 출신 부인이었던 니케시폴리스  왕비의 석관이다

이미 도굴되었지만 프레스코 벽화가 남아있는데

지하 세계의 왕인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자신의 부인으로 삼기 위해 보쌈하는 모습으로

화가 니코마코스Nikomachos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그리스 회화는 남아있는 게 거진 없기에 의미있는 벽화이다

 

신화의 내용을 간략하면....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의 어머니로 농경의 여신이다

데메테르는 하데스의 납치로 딸을 잃은 슬픔에 땅을 불모화시키고 황폐화시킨다

자연히 인간은 물론 동물과 식물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제우스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를 지하로 보내 하데스를 설득하기로 결정했다

하데스는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는 척하며 페르세포네에게 석류알을 먹여서 보낸다

데메테르는 딸을 다시 만나 뛸 듯이 기뻐하며 포옹했다

하지만 하데스의 음식을 먹었을 경우 페르세포네는 하데스에 속한다

따라서 페르세포네는 항상 어머니 데메테르와 함께 할 수 없고 얼마간은 하데스와 지내야 한다

결국 페르세포네는 한 해의 2/3는 지상에서 데메테르와 보내고, 1/3은 지하에서 하데스와 보내게 된다

이것은 일정 기간 즉 겨울 동안 지상에 곡물이 자라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2번 무덤(Tomb II)

 

필리포스 2세 무덤이다

석실 대문의 프리즈 프레스코화는 필리포스 2세와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사냥 장면을 묘사했다

에레트리아Eretria 출신의 궁정 화가인 필로크세노스Philoxenos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알렉산드로스 3세(대왕)

벽화가 많이 손상되었지만 알렉산드로스가 벽화로 남겨진 것으로는 유일하다

 

필리포스 2세의 무덤(Tomb II)의 전실에서 나온 유물로

황금 목 보호대, 총통, 정강이 보호대 등이다

필리포스 2세의 여섯 번째 왕비였던 메다의 유물이다

 

고대 그리스가 남긴 유물 가운데 황금 장식은 많지 않다

그러나 마케도니아는 다른 그리스 국가에 비해 금이 풍부하게 생산되었고

왕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기 위해 유난히 황금 공예품을 많이 만들었다

이는 왕이 절대적 권력을 향유하던 기원전 14~13세기의 미케네 왕성에서

황금 가면과 치장물이 많이 발굴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메다 왕비의 유골 상자 및 도금양 장식의 화관

 

메다 왕비는 필리포스 2세의 여섯 번째 부인으로 트라키아 공주였다

메다는 트라키아 전통에 따라 왕이 죽자 왕이 화장되고 있는 장작더미 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남편과 함께 2번 무덤에 묻혔다

따라서 필리포스의 부인이 총 일곱 명이지만 필리포스와 함께 묻힌 왕비는 메다 뿐이다

 

제작 연도는 당연 필리포스 2세가 암살당한 기원전 336년이다

 

메다의 총통

전사들이 싸우는 장면이 새겨져 있는데 아주 섬세해 세공술이 아주 발달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메다 왕비의 도금양(myrtle) 나뭇가지 장식의 화관

도금양은 관목의 일종이다

 

필리포스 2세의 술 주전자

 

필리포스 2세의 헤라클레스 매듭 왕관

 

암살 당시 착용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필리포스 2세의 은제 술 주전자

 

기원전 350~336년,

시레노스(Silenus)가 조각되어 있는데

시레노스는 포도주의 신인 디오뉘소스의 양부이다

 

필리포스 2세의 황금 유골 상자

 

무게 11kg이고

유공 상자 덮개에는 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16갈래의 태양 빛이 조각된

`베르기나의 태양(Light of Vegina)`으로 장식되었고 다리는 사자의 발 형태이다

 

필리포스 2세의 오크 나무 장식 왕관

 

오크 나무(oak)를 신성하게 여겨 왕권의 상징이었다

313개의 잎과 68개의 도토리로 장식되었다

 

이 왕관 앞에서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정말 사람이 만든 것인지 직접 눈으로 보며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여태 본 것 중 최고의 금 세공품인 것 같다

마케도니아 인의 세공술에 탄복하고 탄복했다

 

필리포스 2세의 정강이 보호대

 

필리포스는 한 쪽 정강이 뼈가 골절된 후 뼈가 제대로 접합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기에 양쪽 보호대의 모양이 다르게 제작되었다

그외 그의 얼굴 왼쪽 흉터의 유골 흔적 등으로 필리포스 2세의 무덤임을 확인했던 단서이기도 하다

 

 

필리포스 2세의 전투복, 칼, 방패

 

 

필리포스 2세 흉갑(胸甲)의 고르곤 두상

 

고르곤Gorgon은 머리카락이 뱀으로 되어 있는 세 자매의 괴물로

메두사(여왕), 스테노(강한 자), 에우리알레(멀리 뛰는 자) 이다

누구든 고르곤 머리를 쳐다보면 돌로 변하게 하는 마력이 있어

저주를 막아주는 보호물로 쓰였다

 

세 자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여인은 메두사다. 

고르곤이 메두사와 거의 동일한 것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메두사는 원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는 메두사가 괴물로 변한 사연을 두 가지로 전해준다. 

하나는 메두사가 아테나 신전에서 포세이돈에게 겁탈을 당했고, 

이를 안 아테나가 벌을 내려 그녀를 괴물로 변신시켰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머리칼을 가진 메두사가 그 아름다움으로 아테나와 경쟁하다 아테나의 벌을 받아 

머리칼이 뱀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훗날 페르세우스(Perseus)는 메두사를 직접 바라보지 않고 아테나가 준 방패에 비친 그녀를 처지한 후 

그 머리를 잘라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게 된다. 

그때 임신하고 있던 메두사의 몸에서 날개가 달려 하늘을 날 수 있었던 천마(天馬) 페가소스(Pegasos)와 

황금칼을 든 거한 크리사오르(Chrysaor)가 튀어나온다. 

포세이돈이 죽어가는 메두사의 피에서 자기 자식들을 태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방패

상아로 제작되었는데 필리포스 2세와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모습은 금으로 장식되었다

 

 

필리포스 2세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을 평정한 이후인 기원전 336년 딸 클레오파트라의 결혼식이 열리던 극장에서

경호원 파우사니아스에 의해 암살되었다

 

암살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하나는

필리포스가 다른 왕비를 맞아들인 후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인 올림피아스와 이혼하며 부자간 갈등이 악화되고

왕위 승계가 불확실해지자 올림피아스와 알렉산드로스가 파우사니아스를 통해 암살을 사주했다는 이야기

 

다른 이야기는

필리포스와 파우니사아스가 동성애지간이었는데 필리포스가 다른 젊은 남자에게 관심을 돌리자 파우니사아스가

질투하여 그 젊은 남자를 조롱하여 전장에서 목숨을 던지게 했고 이에 젊은 남자의 친구인 아탈로스가 분노하여

공식만찬에서 파우니사아스를 취하게 한 뒤 강간을 했다

파우니사아스가 이 사실을 필리포스에게 항의 했지만 아탈로스가 필리포스의 친구이자 군 사령관이기에 무마하려 했고

이에 파우니사아스가 반감을 품고 암살했다는 이야기 등이다

 

필리포스 2세는 뛰어난 능력을 갖춘 명군이었다.

암살만 당하지 않았다면 페르시아 원정을 지휘하는 것은 어쩌면 알렉산드로스가 아닌 필리포스 2세였을 수도 있었다.

학자들 가운데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보다 필리포스 2세를 더 높게 치는 경우도 있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사력은 사실 필리포스 2세가 다 만들어 놓은 것이고 군사적 재능이나 정치력도

필리포스 2세가 더 뛰어났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그가 알렉산드로스 3세가 정복 전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쌓았고 그 활약이 없었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등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필리포스 2세가 기반을 다져 놓았다고는 해도 그것을 유용하게 써먹은 것은

분명 알렉산드로스의 공적이며 헬레니즘 문화가 널리 퍼질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4번 무덤(Tomb IV)

 

알렉산드로스 4세의 무덤에서 출토된 기원전 311년의 사바지오스 상

 

상아와 황금으로 제작된 침상의 장식품인데

사바지오스는 반인반식(半人半殖)으로 트라키아, 프리기아에서 도입된 신으로

디오니소스, 제우스와  동일한 신으로 취급되었는데 자기도취적인 광란을 수반하는 게 특징이다

 

알렉산드로스 4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로크사네 왕비에서 태어난 아들로서

대왕의 이복 여동생 테살로니카의 남편이었던 카산드로스에 의해 12세 때 암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