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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7~1001 장한가(長恨歌)

서영도 2023. 10. 6. 11:28

 
 
영원할 것 같은 하늘도, 땅도 언젠가는 끝이 있으련만 (天长地久有时尽)
면면히 이어지는 이 한은 끝날 기약이 없네                (此恨绵绵无绝期)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장한가(長恨歌)의 마지막 구절로 시의 제목이 된 부분이기도 하다
백거이는 당나라 중기 시선(詩仙) 이백, 시성(詩聖) 두보, 시불(詩佛) 왕유와 함께 당나라 4대 시인이었다
 

 
장한가는 양귀비와 당현종의 사랑을 노래한 시이다 
서안의 서쪽에 작은 마을 마외파가 있는데 이곳에 양귀의 벽돌무덤이 있다
양귀비가 죽고 50년 지난 804년 마외파 인근의 현위로 있던 백거이가 친구들과 함께 
양귀 무덤에 들렸을 때 친구들이 양귀비와 당현종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시로 지어보라고 권했다
천부적 자질을 지닌 백거이가 7언 120행의 840자에 이르는 장편의 대서사시를 지었으니 바로 장한가이다
 
시는 전체적으로 3부분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양귀비와 당현종이 나누는 사랑의 기쁨을 표현하고,
제2부는 양귀비의 죽음과 양귀비에 대한 현종의 그리움을,
제3부는 신선이 된 양귀비가 도사를 통해 전하는 현종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당현종의 치세 30년은 개원 성세로 불릴만큼 당나라 최대의 황금기를 구가했지만
양귀비를 만난 후부터 정사를 팽개치고 간신재상 이임보한테 국정을 일임한다
이후 권력투쟁이 이어지고 안록산과 사사명이 일으킨 안사의 난을 격으며 당나라는 서서히 쇠망하기 시작한다
 
이번 서안여행의 주목적은 그동안의 두 차례 서안여행에서 이루지 못했던 장한가 공연을
삼세번만에는 꼭  보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사전예약이 되지 않고 현지인들도 예약이 쉽지 않다고 하는데
아무튼 현지에 도착해 나름 갖은 방법을 찾아보기로 한다.
 
 

 
화청궁(华清宫)
 
중국 최대 황실 정원으로 수려한 풍경과 뛰어난 온천수로 황제들의 관심을 받아온 곳으로
당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누었던 로맨틱 장소이다
747년에 현종은 온천을 좋아하는 양귀비를 위해서 이곳에 대규모 공사를 실시했다.
온천을 확장한 것은 물론 새로이 궁전을 짓고 궁전 주변을 성벽으로 둘러싸 ‘화청궁(华清宫)’이란 별궁을 완성했다.
 
현재 장한가 공연이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구룡호(九龙湖)
수면에 장한가 공연 무대 시설물이 보인다
 
 

 
 
당현종( (李隆基:이융기 : 685-762)가 양귀비를 처음 만났을 때 56세였고 양귀비는 22살이었다
당현종이 총애하던 무혜비가 사망하고 시름에 겨워할 때 환관 고력사는 모종의 대책을 마련한다
다름아닌 무혜비가 낳은 아들 수왕의 부인이었던 며느리 양귀비와의 만남을 계획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현종이 화청궁에 들리는 날에 맞춰 양귀비를 화청궁으로 부르고
그녀가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순간 현종과 조우하게 한다
세기적 로멘스의 시작이다
 
한눈에 양귀비에 반한 현종은 아들의 아내를 바로 빼앗을 수 없어 양귀비를 일단 화산으로 보내 도교의 도사로 입문시킨다
도가에서는 일단 입문을 하면 그 이전에 있었던 속세의 일들은 다 지워지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현종은 이런 도가사상을 자신의 몰염치한 사랑에 이용한다

 

비록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였지만

당현종은 음악에 조예가 아주 깊었고 양귀비 또한 재색을 겸비해 춤과 음악에 아주 비상한 재주를 지녔기에

서로에게 쉽게 빠질 수 있었다

 
 
 

매화탕
양귀비 전용 목용탕, 매화꽃을 닮은 모양
 
 

연화탕
황제 전용 목욕탕
 
 

 
 

장한가 공연
 
공연은 4월부터 10월까지 매일 저녁 3차례씩 열린다
티켓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던 마음은 날씨탓에 예매를 취소하는 사람이 생기며 해결되었다
하지만 야외공연이기에 우천의 날씨는 공연에 장애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낮에 화청지와 진시황 병마용갱을 둘러볼 때부터 비가 주적거렸는데
8시 40분 공연시간이 가까워지자 빗방울은 더 굵어졌다
입구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판초우의를 입고 지정좌석에 앉아 공연을 기다리는데
공연시간이 되자 정말 거짓말처럼 비가 그친다
오늘은 정말 운수 좋은 날인 것 같다
구하기 어렵다는 티켓을 구했고 제대로 공연도 관람할 수 있으니.....
 
 

 

 
 
무대 조명이 들어오며 무수한 불빛이 빤짝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낮에 보았던 화청궁 뒷편 여산(麗山) 전체에 조명이 켜진 것이다
무대가 웅장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어찌 산 하나 전체를 배경무대로 사용한단 말인가....
관람 내내 무대의 스케일과 화려함에 감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기 전에 서안에서 꼭 봐야할 공연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수긍하면서....
 
 
 
백거이의 장한가를 장한가 공연 내용에 매치하여 부분 발췌한다
 
 

 

 

 
天生麗質難自棄 천생려질난자기
一朝選在君王側 일조선재군왕측
回眸一笑百媚生 회모일소백미생
六宮粉黛無顔色 육궁분대무안색
 
타고난 고운 모습 스스로 버릴 수 없어서 
어느 날 간택되어 임금 곁에 있게 되었네. 
눈동자 굴려 한번 웃으면 백가지 아름다운 모습 생겨나니 
여러 궁궐 속 곱게 화장한 궁녀들이 빛을 잃었네. 
 
 

 
 

 

 

 

<양귀비 화청궁 목욕 장면>
 
春寒賜浴華淸池 춘한사욕화청지
溫泉水滑洗凝脂 온천수골세응지
侍兒扶起嬌無力 시아부기교무력
始是新承恩澤時 시시신승은택시
 
날씨 차가운 봄날 임금님 온천에서 목욕하게 되어 
매끄러운 온천물에 희고 고운 살결 씻어냈네. 
시녀들이 부축할 때 힘없는 듯 교태부리니 
이로부터 임금님 은총을 받는 계기가 되었네. 

 

 
雲鬢花顔金步搖 운빈화안금보요
芙蓉帳暖度春宵 부용장난도춘소
春宵苦短日高起 춘소고단일고기
從此君王不早朝 종차군왕부조조
 
꽃다운 얼굴 구름 같은 머리에 금빛 머리장식 흔들며 
부용꽃 장막에서 함께 봄밤을 보내네. 
봄날의 밤은 너무 짧아서 해가 높이 떠오른 후에야 일어나니 
이때부터 임금님은 아침조회를 열지 않게 되었네.
 
 

 
承歡侍宴無閑暇 승환시연무한가
春從春游夜專夜 춘종춘유야전야
後宮佳麗三千人 후궁가려삼천인
三千寵愛在一身 삼천총애재일신
 
 
임금님 즐거움을 받들어 모시고 잔치 여느라 한가할 틈 없었고 
봄엔 봄놀이 친구 되고 밤이면 임금님 사랑을 독차지 하였네. 
후궁엔 아름다운 궁녀가 삼천이나 있었지만, 
삼천궁녀가 받을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네. 
 

 

 
金屋粧成嬌侍夜 금옥장성교시야
玉樓宴罷醉和春 옥누연파취화춘
姊妹弟兄皆列土 자매제형개렬토
可憐光彩生門戶 가련광채생문호
 
황금침실에서 곱게 화장하고 애교 부리며 모시는 밤 
옥루에서 잔치하니 화사한 봄날처럼 취하였구나 
자매형제 모두 봉토를 받아 제후의 반열에 서게 되니
휘황한 광채가 가문에 빛나는구나.
 
 

 

 


漁陽鼙鼓動地來 어양비고동지내
驚破霓裳羽衣曲 경파예상우의곡
九重城闕煙塵生 구중성궐연진생
千乘萬騎西南行 천승만기서남항
 

동북 어양 땅에서 일어난 반란군 북소리 지축 울리며 닥쳐오니 
예상우의곡 가락에 맞추던 잔치판 혼비백산 깨져 버렸네
구중궁궐이 전쟁 연기에 휩싸이니 
수천 수만의 수레와 말들이 서남쪽(蜀지방)으로 쫓기게 되었네.

 

漁陽鼙鼓(어양비고) :

天寶(천보) 14년(755년) 11월에 安祿山(안녹산)이 范陽(범양)에서 반란을 일으킨 안사의 난을 말함

安祿山은 체중이 200斤이 넘는 육중한 몸매의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춤도 잘 추고 몸이 날쌘 장수였고,

玄宗과 楊貴妃에게 아첨을 잘해서 사랑과 신임을 받으며 그들과 양자관계까지 맺었다

(나이는 양귀비보다 오히려 많았다고 함)

그러한 신임을 바탕으로 천보 10년(751년)에는 平盧, 范陽, 河東 3개 지역 절도사를 겸하는 막강한 실력자가 되었다.

그런데 양귀비의 사촌(?)오빠인 楊國忠이 권신 李林甫(이림보)의 후임으로 右丞相(우승상)이 되어,

권력을 좌지우지하며 경쟁관계가 된 그를 모함하며 견제하자 755년 11월 간신 楊國忠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다음해인 757년 1월 5일 자기의 둘째 아들 安慶緖에게 피살당하고 만다.

그가 현종과 양귀비의 養子로 되었으나 사실은 양귀비의 언니인 괵국부인(虢國夫人)과는 물론 양귀비와도

불륜관계였다.

 

裳羽衣曲(예상우의곡):

현종이 서역에서 들어온 음악을 바탕으로 직접 작곡한 곡,

玄宗은 용모가 수려하고 영특했으며, 음악과 서예 등 모든 면에 뛰어났다

음악적인 재질도 뛰어나서 霓裳羽衣曲, 新曲 40余曲 등을 편곡하거나 직접 제작했으며,

궁중에 梨園(이원)이라는 음악교습소를 두고 수백명의 梨園弟子(이원제자)들에게 직접 笛(피리) 등 음악을 가르쳤다 한다

 

 


翠華搖搖行復止 취화요요항복지
西出都門百餘里 서출도문백여리
六軍不發無奈何 육군부발무나하
宛轉蛾眉馬前死 완전아미마전사
 
 
오색 깃발의 황제 어가가 흔들흔들, 가다 서다를 반복하더니 
서쪽으로 도성문 100리를 나갔다오 
황제 근위병이 움직이려 하지 않으니 어쩔 것인가 ? 
아름다운 양귀비, 천자의 군마 앞에서 죽고 말았네
 
六軍不發(육군불발) :
황제 근위부대인 육군(六軍)이 가던 길을 멈추고 떠나지 않음.
6월 13일 날이 밝기 전에 수도 장안성을 급히 빠져나간 황제 근위부대(近衛部隊)가 다음날 오후까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기진맥진 행군하며 70여 Km 떨어진 마외파(馬嵬坡) 언덕에 이르러서 불만이 폭발하여
반란의 원인을 제공한 양국충(楊國忠) 등 양씨 일족을 처단해 버린 후 양귀비의 죽음까지 요구한 사태를 말함.
 
 

 

 


花鈿委地無人收 화전위지무인수
翠翹金雀玉搔頭 취교금작옥소두
君王掩面救不得 군왕엄면구부득
回看血淚相和流 회간혈누상화류


꽃비녀 땅에 버려져도 아무도 거두는 자 없네. 
비취머리빗, 황금공작, 옥비녀 모두 버려져 있었네.
임금님도 얼굴만 가릴 뿐 그녀를 구해주지 못하고 
되돌아보는 얼굴에 피눈물이 범벅되어 흐르네. 

 

 

 
行宮見月傷心色 항궁견월상심색
夜雨聞鈴腸斷聲 야우문령장단성
天旋地轉廻龍馭 천선지전회용어
到此躊躇不能去 도차주저부능거
 
 
피난처 행궁에서 바라보이는 달을 보고 마음 아파하고, 
밤비에 방울소리 들려오니 애간장 끊어지네. 
난리가 평정되어 임금님 수레 돌아오니 
이 곳 마외파에 이르러 머뭇거리고 차마 떠나질 못하네. 

 

*서쪽 사천성으로 피란길에 올랐던 당현종이 반란이 수습되고 다시 장안으로 돌아오고

 무덤가에서 죽은 양귀비를 그리워하는 당현종의 애달픈 마음을 묘사하고 있다

 

 

 
爲感君王展轉思 위감군왕전전사
遂敎方士慇懃覓 수교방사은근멱
排空馭氣奔如電 배공어기분여전
升天入地求之遍 승천입지구지편
 
군왕의 전전하는 그리움 감동시키기 위해 
도사에게 은근하게 양귀비의 혼을 찾아 나서도록 하였다. 
도사가 공중으로 치솟아 바람을 타고 번개처럼 내달리며 
하늘에 올라보고 땅속에 들어가 구석구석 찾아보았네. 
 
*신선이 되어 하늘나라에 있는 양귀비를 도사가 찾아나서는 내용
 
風吹仙袂飄飄擧 풍취선몌표표거
猶似霓裳羽衣舞 유사예상우의무
玉容寂寞淚闌干 옥용적막누란간
梨花一枝春帶雨 이화일지춘대우
 
 
바람 불어 신선의 소매 자락이 하늘하늘 나부끼니 
마치 예상우의곡 가락에 맞추어 춤추는 것 같네. 
옥 같은 얼굴 쓸쓸한데 눈물이 어지러이 얼굴 적시니 
한 가지의 배나무 꽃이 봄비에 젖은 듯 하네.
 
* 자신을 찾아온 도사를 만나 신선 양귀비가 슬퍼하는 모습을 묘사
 
 

 
含情凝睇謝君王 함정응제사군왕
一別音容兩渺茫 일별음용량묘망
昭陽殿裏恩愛絶 소양전리은애절
蓬萊宮中日月長 봉래궁중일월장
 
정겨운 눈길로 지그시 바라보며 임금께 예를 표하고 말하기를, 
한번 이별한 후엔 음성도 모습도 아득하기만 합니다. 
소양궁전에서의 임금님 은총 끊어진 이후 
이곳 봉래궁에서 보낸 나날 길기만 했답니다. 

 

 

臨別殷勤重寄詞 림별은근중기사

詞中有誓兩心知 사중유서량심지

七月七日長生殿 칠월칠일장생전

夜半無人私語時 야반무인사어시

 

도사가 떠나려할 때 또다시 은근하게 전하는 말 있었는데 

말 속에서 천자와 둘만의 마음속 맹세가 있었음을 알았네. 

칠월 칠일 칠석날 천지신명께 제사 드리는 장생전에 나아가, 

아무도 없는 밤중에 둘이서 귀엣말로 속삭여 맹세하기를

 

*신선이 된 양귀비가 도사를 통해 당현종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는 내용이다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련리지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처럼 한데 얽혀 사랑하자 하였네. 
영원할 것 같은 하늘도, 땅도 언젠가는 끝이 있으련만
면면히 이어지는 이 한은 끝날 기약이 없네   
 
  
* 생전 장생전에서 당현종이 양귀비에게 했던, 두 사람만이 알고있는 언약의 말을
  도사를 통해 당현종에게 전함으로써 자신이 하늘나라에 살고있음을 알린다
 
  比翼鳥(비익조) : 암·수 두 마리의 새가 각각 눈(目)과 날개(翼)를 하나씩만 갖고 있어
  둘이 합쳐야만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전설상의 새. 
  連理枝(연리지) : 뿌리와 나무 밑둥은 다르지만 윗줄기나 나뭇가지가 한데 엉겨 붙어 있는 나무
  <연리지>나 <비익조> 모두 금슬 좋은 부부의 상징으로 일컬어 짐.
 
 

 
공연은 칠월칠석 날 수많은 비익조가 나르는 가운데
양귀비와 당현종의 사후 영혼이 다시 만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일국의 정사를 내팽개치다시피까지 하면서 34살 아래의 경국지색 며느리를 택한 당현종의 사랑도,
한 나라의 황제를 파멸로 몰아간 팜므파탈 양귀비의 치명적 사랑도 모두 잊혀지고
오직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남녀의 애달픈 사랑만이 남아 오래도록 기억될 아름다운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