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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8 연의

서영도 2023. 12. 6. 17:38

 
요즘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 등의 연의소설을 읽고 있다
원본의 명칭이 엄연히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서한연의(西漢演義), 삼국연의(三國演義)임에도
우리는 이들을 통상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로 부른다
`연의(演義)`란 원본의 서술이 미진하여 대의가 잘 드러나지 않을 때
그 서술을 보충하여 의미를 잘 드러나게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역사 소설에서 `연의`는 정사의  누락 부분을 상상에 의지하여 풀어낸다는 뜻도 포함한다
따라서 연의소설이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허구적인 내용을 덧붙여 흥미를 더한 통속소설이다
 
열국지(列國志)는 춘추전국시대 550년 동안 수많은 제후국의 파란만장한 권력투쟁과 흥망성쇠를
다룬 것으로 정사 `춘추좌전`, `국어` 에 근거하여
풍몽룡 원작을 청 건륭 연간의 채원방이 정리한 동주열국지 (東周列國志)가 원본이다

열국지는 중국인들이 삼국지보다 더 즐겨 읽는 책으로 마오쩌뚱의 애독서이기도 했다
비록 연의소설일망정 허구는 1할도 되지 않아 삼국지가 소설이라면 열국지는 정사로 간주되고 있는데 
이는 춘추전국시대의 역사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周 선왕(기원전 789)부터 진시황(기원전 221년)까지 550여 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110여 나라의 4,65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역사와 사상은 이후 동아시아 전체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그리스 신화가 서양 인문학의 원천으로 서양 전체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에 견주어
열국지를 그리스 신화에 비견하기도 한다.
 
초한지(楚漢志)는 열국지, 삼국지와 더불어 중국3대 고전으로 초·한쟁패 이야기인데
진나라(秦) 말기부터 한나라 초기까지의 역사를 다룬 소설로서 정사는 당연 한무제 때 사마천의 `사기`이다
명나라 때의 견위(甄偉)가 오래 동안 대중에게 각종 연희 형태로 공연되던 대본 내용과 구전설화를 더해
1612년 쓴 서한연의전(西漢演義傳)이 원본이다
장기판의 모델인 초한 (楚漢)의 싸움과 십면매복, 사면초가,토사구팽, 배수진, 분서갱유, 낭중지추 등
우리 일상 어휘로 사용하는 고사성어가 초한지에서 나왔다.
 
삼국지( 三國志)는 위 · 촉 · 오 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에서 출발했다
시기적으로 후한말 홍건적의 난(184년) 때부터 진(晉)이 오(吳)나라를 멸하기까지(280년)
약 100년 동안 1,190여 명이 등장한다
역사기록을 바탕으로 원말, 명초 나관중(羅貫中)에 의해 여러 시대에 걸친 민중들의 구전설화와
재담, 연희, 연극 등의 공연예술을 덧붙였는데 3할(七實三虛)의 허구가 영웅들의 형상에
문학적 생명력을 불어넣어 삼국지다움이 완성되었다

열국지가 거대한 산맥이라면 삼국지는 태산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세 종류의 연의는 단지 중국의 역사 이야기를 넘어 현재 우리의 삶과 문화의 다방면에 깊이 녹아들어 있다
이 고전을 읽으며 어떤 이는 정의와 의리를 볼 것이고,
어떤 이는 경영과 처세를 읽을 것이다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과 나이에 따라서 그 느낌은 물론 다를 것이다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도 하게 될 것이며
인생이 덧없다는 회한으로 가슴이 썰렁해지기도 할 것이다.
 
난 번역된 글을 읽을 때 저본이 어느 것인지, 번역자의 문장력은 어떠한 지를 눈여겨 보고 선택한다
열국지와 초한지는 김영문의 글을 택했고 삼국지는 황석영의 글을 택했다
김영문은 열국지를 번역하며 기존 번역의 오류를 수정하고 국내 최초로 `동주열국지 사전`를 제작했으며
초한지는 김영문이 서한연의를 국내 최초로 완역했을 뿐더러
번역문에서 흔히 보이는 문장의 어색함이 별로 없어보여 문장력도 좋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삼국지는 수많은 삼국지 중에 황석영의 삼국지를 읽었다
그동안 국내 출판된 삼국지는 죄다 대만 출판의 삼국연의를 번역했을 뿐더러 작가의 창작이 더해졌지만
황석영은 과거 방북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삼국지를 다시 접하게 되면서
중국 출판의 삼국연의를 저본으로 하여 저본에 충실하면서도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냈기에 택했다. 
 
이들 연의소설은 오랜 전부터 중국 민간에서 이야기로 진행되는 공연형태로 존재해
오랜 기간 끊임없이 민중에게 환영받아왔는데 마치 이를 반영하듯 황석영은 그의 삼국지 서문에서
" 6·25전후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가 거의 파괴되거나 군부대 시설로 이용되고 있어서 교실도 변변이 없었다.
선생님들은 결근이 잦았고 아예 부임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몇개 학년을 겹치기로 가르치기도 해서 자습시간이 많았다.
이런 때에는 내가 단골로 앞에 나가서 책에서 본 줄거리들을 그럴 듯하게 아이들에게 얘기해주는 날이 많았다.
내가 `삼국지 이야기`를 해주던 때가 이를테면 이야기꾼으로서의 전성기였던 셈이다.
나의 `삼국지 이야기`는 대번에 유명해져서 자습 중인 다른 반 아이들이 우리 교실로 몰려오기도 했다.
이야기의 묘미는 아슬아슬한 대목이나 슬픈 장면에서 딱 자르고 다음 시간을 기약하는 데 있었다.
아이들이 그다음 내용을 물으면 절대로 말해주지 않고 시치미를 떼어야 하는데도
무지무지한 참을성이 필요했다 " 라고 했으니 이야기꾼으로서의 공연이 당시 꽤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나도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를 읽으며 황석영의 흉내를 좀 내보기로 했다
황반변성으로 시력을 잃어 책을 보지 못하는 아내에게 `책 읽어주는 남편` 노릇을 해보기로 맘 먹었다
주로 점심 시간에 맞춰 이야기를 하는데 초회부터 아내가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당장 다음 날 점심 때 내가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그 다음은 어떻게 돼요? "라고 먼저 물어오기까지 한다
책의 쪽수가 열국지 3,748, 초한지 1,416 ,삼국지 3,036로 세 종류 연의의 쪽수를 합하면
페이지 수가 총 8,200쪽에 달해 토지의 9,680 쪽에 어금버금일 정도로 방대하다
책의 편집에 따른 소제목을 하나씩 이야기하면 향후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근래 점심은 밖에서 해결하란 지청구를 심심찮게 들어왔는데 이제 한동안은 잔소리 듣지 않고
떳떳이 마음 편하게 점심을 얻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책 읽어 주는 남편`으로서의 지위를 맘껏 향유해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