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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0 결초보은

서영도 2024. 4. 19. 17:45

결초보은(結草報恩)은
`풀을 묶어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죽어서도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한다`는 의미의 고사성어이다
 
그 유래는
춘추시대 晉나라의 위과(魏顆)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위과의 아버지 위주( 魏犨)에게는 조희 (祖姬) 라는 애첩이 있었다
위주는 매번 전장에 나갈 때마다 아들 위과에게 당부했다

" 내가 만약 전쟁터에서 죽으면 좋은 배필을 골라서 이 여자를 출가시켜라 "
그러나 위주는 정작 병에 걸려 위독해지자 말을 바꾸어 

" 이 여자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니 함께 순장하여
지하에서도 내가 짝을 삼을 수 있게 하여라 " 라고 유언한다
위주가 세상을 떠나자 위과는 아버지가 맑은 정신일 때 한 유언이 올바른 것이라 판단하여
조희를 순장시키지 않고 좋은 선비한테 개가시켜준다.
 
훗날 晉의 경공과 秦의 환공이 노나라 땅을 놓고 쟁패를 벌일 때이다

위과가  晉의 장수로 출전하는데 秦나라에는 두회(杜回)라는 천하무적의 장수가 있어

위과는 연전연패를 하며 고전한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있던 위과가 늦은 시각에 잠에 빠져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의 귓가에 청초파(靑草坡)란 세 글자를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청초파는 전장에서 가까운 곳의 지명으로 `푸른 풀이 자라는 언덕`이다

위과는 꿈 이야기를 동생 위기한테 들려주고 위기를 청초파에 미리 매복시킨 후 두회를 유인한다
두회가 청초파 중간에 이르렀을 쯤 갑자기 발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위과가 눈을 들어 보니 멀찌감치 농부 차림의 어떤 노인이 푸른 풀이 우거진 언덕에서

풀을 묶어놓고 두회의 발이 그곳에 걸리게 하고 있다

두회가 풀묶음에 걸려 힘을 쓰지 못하고 비틀거릴 때 생포해 죽이고 마침내 위과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그날 밤 위과가 비로소 편안한 잠을 자는데 꿈속에 낮에 보았던 노인이 나타나 읍을 하며 말한다
" 나는 조희의 아버지입니다.

장군이 아버지의 뜻을 잘 받들어 제 딸을 좋은 곳으로 개가시켜주었으니 장군은 제 딸을 살려준 은인입니다. 

장군이 두회와의 전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은혜에 보답하려 도와드린 것입니다.

앞으로 장군의 집안은 대대로 번창하여 제후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
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실제 위과의 후손들은 晉나라의 귀족으로 영광을 누리다가 전국시대에는 魏나라의 왕족이 된다.
 


내가 결초보은의 유래를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근래들어 근교산행을 아내와 함께 자주 하곤 한다

때가 때인만큼 만화방창의 꽃도 보면서 노화로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체력을 관리하고자 함이다
산행 중 아내가 힘들어 하면 등산스틱 손잡이를 뒤로 내밀어 잡게하여 당겨주거나
뒤에서 밀어주기도 하고 때로 하산 때 시력장애로 잘 보지 못해 위험한 구간에서는
옆에서 겨드랑이를 끼고 걷기도 한다.
 
지난 14일 화왕산 산행 때는 새벽 일찍 길을 나섰는데
아내는 초반 잠이 온전히 깨지 않아서인지 계곡을 따라 이어진 임도길 가풀막에서 힘들어 했다
더구나 계곡 특성상 햇빛이 일찍 들지 않아 추위 마저 느끼고 있기에 길에 선 채로 잠깐 아내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때 아내가 문득 " 나중에 결초보은 할께요 "라고 한다.
난  " 어떻게 결초보은을 할거야? "라며 귓등으로 듣듯 웃어 넘기고 바로 산행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며칠 후 비슬산 진달래를 보고 저녁 식사를 위해 주변 식당에 들렸을 때이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최근 列國志를 읽어 익히 알고 있는 결초보은의 유래에 대해 들려 주었다
설명이 끝날 즈음 마침 음식이 들어왔는데 닭불고기의  매운 맛에 얼이 빠져 더 이상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며칠이 더 지난 후 점심 식탁에 앉았을 때

" 나한테 어떻게 결초보은 할래? " 라고 물으니

" 잘해줄께요 " 라는 외마디만 던지고 딴청부리듯 웃기만 할 뿐 더 이상 다른 대꾸는 없다

아무래도 아내가 결초보은이란 생각을 한번 해준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결초보은이 특별히 어떤 보상을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환자는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니 아내가 큰병 걸리지 않고 건강하고 혹시 기적적으로 황반변성이 호전되어

시력이 좀 좋아져 내가 신경쓰지 않게 해주면 진정한 결초보은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설혹  결초보은이란 말을 허투로 내뱉어 본 것일지언정

늙어 가며 지청구라도 좀 덜 들으면 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