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간 : Trient ~ Champex / 15.4km / 7시간 50분
경 로 : Trient(1307m) ~ Col de la Forclaz(1530m) ~ Port(2039m) ~ Alpage de Bovine(1970m)~ Champex(1498m)
< 상승고도 730m / 하강고도 540m >
어제 오후부터 간간히 흩뿌리던 비가 밤이 되며 점점 더 굵어졌기에 오늘의 트레킹이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아침 날씨는 쾌청하게 맑아 가벼운 발걸음으로 트리앙을 출발한다
더구나 완전 잃어버린 줄 알았던 스틱이 두 손에 단단히 잡혀있다는 사실은 안도감을 배가시키기에 충분했다....
트리앙에서 샹페로 가는 길은 크게 2 종류이다
일명 젖소길로 불리는 비교적 수월한 보빈(Bovine)길과
보다 극적인 산세의 경관을 즐길 수 있는 프네트르다르페트(Fenetre d`Arpette) 고개를 넘는 길이다
나의 성향상 혼자라면 당연 후자의 길을 선택하겠지만 결정은 오로지 현지 가이드의 몫이기에 그가 가자는 대로 갈 수밖에 없다
한동안 오르막 소로길을 따라 올라 온몸이 땀으로 젖어들기 시작할 즈음 관개수로가 흐르는 임도길이 나타나며
보빈길과 프네트르다르페트 갈림길 표지판이 보인다
프네트르다르페트 고갯길은 우측 방향이고 보빈길은 좌측 방향으로 포르클라 고개로 향하게 된다
포르클라 고개가 능선상의 잘룩한 재 정도일 거라 생각하고 있다 막상 고개에 이르고 보니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도이다
인근에 위치한 마흐띠뉘(Martigny)라는 비교적 큰 도시를 연결하는 고갯마루이기에 차도가 형성된 것 같다
포르클라 고개(Col de la Forclaz)
한쌍의 오토바이족 커플이 휴식을 끝내고 막 출발하려한다
우렁찬 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그들을 한없이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게 된다
언젠가 알프스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휘감아 돌며 엑셀을 힘껏 당겨보게 될 날을 꿈꾸어 본다
속도와 위험한 스릴에 대한 나의 호감....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마흐띠뉘 시가지가 저 아래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포르클라 고개를 지나 다시 산길로 접어들어 한동안 이어지는데 갑자기 수목이 전혀 없는 큰 개활지 La Giete가 나온다
잦은 눈사태 등으로 나무가 휩쓸려 초지 형태로 변한 것이라고 필립이 말한다
La Giete의 휴식
만약 겨울에 내가 이 자리에 있는데 눈사태가 나면 난 저 큰 바위 뒤로 피하겠는데
그러면 내가 생존할 수 있을까 ?라고 가이드 필립한테 물으니 그건 눈사태의 정도에 따라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실없는 소리로 장난을 치다 둘이 그 바위에 올라 사진 한컷......
오늘의 일정은 고도를 900m 정도 올리고 700m 정도를 내리는 날이다
단조롭게 이어지던 길이 마침내 최고점, 고도 2039m에 이르게 되는데 아주 좁은 통문처럼 생긴 곳을 통과하게 된다
반대편으로 경사가 거의 없는 넓은 구릉지의 소 목축장이 나타나는데 보빈길의 보빈(Bovine)이다
불어로 보빈(bovine)은 보벵(bovin)의 여성형이다
TMB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과거 낙농장으로 사용되던 건물들이 지금은 산장 및 식당 형태로 개조되어 운영되는 곳이 많다
보빈의 Alpage de Bovine도 한눈에 그렇게 형성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구조이다
보빈에 도착할 즈음 흩뿌리듯 하는 비가 오고 그치기를 반복하는 상황이었는데 필립이 다행이 비좁은 Alpage내부의 자리를 구해
느긋하게 앉아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빵, 치즈, 햄 등으로 이루어진 식탁은 힘겹게 걸어온 사람들에게 더없는 진수성찬이 된다
별종의 식성을 가진 나만을 빼고는.....
Alpage de Bovine(Buvette)
Alpage는 불어로 `고지하계목장`, Buvette는 `간이식당`이란 의미이다
보빈에서는 마흐티뉘(Martigny) 시가지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후 샹페까지는 완만한 내리막 경사길이 이어진다
산길은 부드러운 등고선을 그리며 널따란 비탈을 이리저리 가로질렀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늦여름 꽃들은
풀밭에 붉고 노란 색을 흩뿌렸다
야생 블루베리가 보일 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가지를 들추어 가며 열매를 찾아 따먹는다
필립은 여우 오줌이 묻은 블루베리를 먹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간질환에 대해 경고하지만 난 지천에 널린 공짜의 열매에 환장했다
사실 과일을 주식으로 삼는 나에게 있어 치즈와 햄 등으로 이루어진 알프스의 식단은 언제나 나의 허기를 채워줄 수 없는 성찬이었기에....
그런데 야생이라 그런지 열매가 작고 듬성듬성 열려있어 매번 감질날 뿐이었다
정말 감질나 !!!!
도로 곳곳에는 UTMB 축제를 알리는 표지판들이 걸려있다
5종류의 경기가 열리는데 최소 100km 이상으로 가장 인기있는 UTMB는 170km의 산악울트라마라톤이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제다 후덜덜한 `미친 경기`이다
숙소 En Plein Air